[서울이야기] 백운동천(白雲洞川), 자하문로에 묻힌 청계천 본류

게시자: 알 수 없는 사용자, 2013. 10. 21. 오전 1:43
선주성 시티스토리 편집장 | 2013.07.25 ChosunBiz.com

- 장맛비에 발원지 백운동계곡에는 거센 물줄기

- 옥류동천과 합쳐져 청계천으로 흘러 들어가 

“청계천의 발원지는 어디일까.”

청계천이 2005년 10월 복원된 뒤, 서울 시민뿐만 아니라 한국을 찾는 외국인에게도 서울을 대표하는 명소 중 하나로 자리를 잡았다. 그런 청계천를 찾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청계천이 어디에서 흘러왔는지에 대해 궁금증을 갖는다. 특히 자녀와 함께 청계천을 찾는 어른들은 아이들이 “청계천은 어디에서 흘러온 것이야"라고 물으면 제대로 답변하기 어렵다.
일제시대에 이어 해방이후 서울이 현대 도시로 개발되는 과정에서 청계천의 상류 물길위에 도로가 생기면서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졌기 때문이다. 실제 복원된 청계천의 시작점인 서울 동아일보사 앞 청계광장 일대에서 상류 물길을 짐작조차 하기 어렵다. 

지난 22일 폭우가 쏟아지는 가운데 조선비즈 연결지성센터 서울탐사팀은 청계천의 뿌리를 찾기 위해 옛 지도와 현재 지도를 갖고 청계광장에서 시작해 땅속의 청계천 상류지역을 거슬러 올라갔다.
겸재 정선의 ‘창의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그림 왼쪽의 물줄기가 백운동천이다. 그림 위쪽에 있는 창의문을 중심으로 왼쪽이 인왕산, 오른쪽이 북악산이다. 그림에서 보면 백운동천이 인왕산 자락에서 흘러내림을 알 수 있다. 백운동천 왼쪽 언덕이 지금의 자하문터널 위다. 그림 오른쪽 물줄기는 북악산에서 발원해 경복궁 안으로 흘러 들어가 삼청동천과 만나는 대은암천./사진=국립중앙박물관 제공
 겸재 정선의 ‘창의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그림 왼쪽의 물줄기가 백운동천이다. 그림 위쪽에 있는 창의문을 중심으로 왼쪽이 인왕산, 오른쪽이 북악산이다. 그림에서 보면 백운동천이 인왕산 자락에서 흘러내림을 알 수 있다. 백운동천 왼쪽 언덕이 지금의 자하문터널 위다. 그림 오른쪽 물줄기는 북악산에서 발원해 경복궁 안으로 흘러 들어가 삼청동천과 만나는 대은암천./사진=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청계광장에서 세종문화회관 뒷편까지

먼저, 옛 지도와 문헌을 통해 청계천의 상류는 자하문 터널 근처에서 시작되어 세종로사거리 근처까지 흐르는 백운동천이라는 점을 확인했다. 백운동천은 조선시대에는 지금의 세종로 사거리에서부터 ‘개천(청계천)’이라고 불려졌다.

따라서 백운동천의 끝 지점과 청계천의 시작 지점이 세종로 사거리 근처에서 땅에 묻힘으로써 청계천의 본류가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진 셈이다. 청계광장 입구에 서서 세종로 사거리 북서쪽 방향 바디숍과 CU편의점 사이 골목(새문안로9길)과 동화면세점, 청계광장을 선으로 이으면 백운동천과 청계천을 연결할 수 있다.
종로구청 치수방재과 이정원 주무관에 따르면 현재 복개천은 동화면세점 앞 인도 밑을 지나 청계광장 쪽으로 흘러간다고 한다.
백운동천의 물길 흐름. 현재 모두 복개된 상태로 도로로 이용되고 있다./그래픽=최지웅 연결지성센터 연구원
 백운동천의 물길 흐름. 현재 모두 복개된 상태로 도로로 이용되고 있다./그래픽=최지웅 연결지성센터 연구원
옛 문헌에 따르면 세종로 사거리 근처 물길에 송기교(松杞橋), 신교, 모전교 등이 있었는데, 송기교까지를 백운동천 구역으로, 그 이후 신교, 모전교 구간은 개천(청계천) 구역으로 분류했었다. 조선시대에는 종로에서 서대문 방향으로 가려면 송기교를 건너야만 했다. 

세종문화회관 뒷편에서 금천교시장까지

세종로 사거리에서 북서쪽 방향으로 난 길인 새문안로9길이 백운동천 물길이다. 이 길을 따라 광화문역 1번, 8번 출구 뒤 주차장을 지나 다시 세종문화회관 뒷쪽에 북서쪽 방향에 있는 새문안로5가길을 따라 가면 백운동천을 거슬러 가는 것이다.

새문안로5가길을 계속 가면 [[종교교회]] 앞 작은 네거리를 만난다. 종침교(또는 종교)라는 다리가 있던 곳이다. 종교교회는 다리이름에서 그 이름을 따왔다. 종교교회 앞 길은 경복궁역에서 사직단으로 가는 길이 없었던 조선시대 말까지 사직단으로 가는 핵심도로였고, 종침교는 이 길 위에서 백운동천을 건너기 위한 중요한 다리였다. 

백운동천은 경복궁역 방향에서 흘러 내려온다. 경복궁역 사거리를 건너면 바로 금천교시장이 있다. 백운동천이 복개되기 전에 있던 금천교라는 다리를 기억하고 있는 작은 골목시장이다. 통인시장과 더불어 내국인은 물론 외국인들도 한국의 문화를 느끼기 위해 많이 찾는 곳이다. 

금천교시장에서 자교까지

금천교시장에서 자하문로 서쪽 인도를 따라 터널 방향으로 200여미터 올라가면 우리은행 효자동지점을 만날 수 있다. 은행 왼쪽으로 옥인동으로 연결되는 자하문로7길이 있다. 수성동계곡과 옥류동계곡에서 내려오는 옥류동천 물길이다. 이곳에서 백운동천은 옥류동천을 맞아 하나가 되어 청계천으로 흘러간다.

다시 자하문로 따라 300여미터 더 가면 신한은행이 보이고, 그 앞에 횡단보도가 있다. 이 횡단보도가 있는 곳에 1930년경 자하문로가 복개될 때까지 자수궁교(또는 자교)라는 다리가 있었다. 경복궁 옆 효자동과 통인동을 연결하는 다리였다. 

길 건너편 효자동 방향 자수궁교 남쪽에는 1922년 미국 남감리회 소속 캠벨여사가 세운 붉은 벽돌의 [[자교교회]]가 아직도 굳건히 서있다. 종교교회와 같은 뿌리를 가진 교회다. 미국 남감리회 소속 교회들은 다리 이름에서 교회이름으로 가져온 경우가 많았다. 청냉교(광희문)교회, 수표교교회 등도 남감리회 소속이다.

자교교회에서 후기성도교회까지

자하문로 인도를 따라 계속 북쪽으로 올라가는 길이 백운동천 물길을 따라가는 길이다. 백운동천을 품고 있는 지하암거는 자하문로 서쪽, 자하문터널에서 경복궁역 방향 차도 밑 인도쪽에 붙어 묻혀있다. 폭과 높이가 약 5미터 정도 된다.
발걸음은 푸르메재활센터 앞 사거리에 이른다. 신교동 교차로다. 청운동 주민센터가 있는 이 곳에 조선 중기에 만들어진 신교(新橋)라는 다리가 있어 붙여진 동네 이름이다. 
청운초등학교 담장이 끝나는 지점은 왼쪽 길에서 내려오는 청풍계(淸風溪) 물줄기가 백운동천과 만나는 곳이다.

길을 걸으면서 자하문로를 올려다보면 왼쪽으로 인왕산을, 오른쪽으로 북악산을 만난다. 1986년 완공된 자하문터널이 인왕산 동쪽 끝에 있는 청운동을 양쪽으로 갈라 놓아 자하문터널 오른쪽에 있는 백운동계곡이 마치 북악산 자락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경기상업고등학교 앞 횡단보도를 건너 다시 자하문터널 방향으로 걸으면 예수그리스도 후기성도교회를 만난다. 후기성도교회 일대는 1964년까지 동농 김가진선생의 집터와 백운장이라는 정자가 있었다.

후기성도교회에서 백운동천 각자 바위까지

백운동계곡을 가려면 예수그리스도 후기성도교회 앞 언덕길을 올라가야 한다. 교회 뒷쪽으로 올라가면 백운동계곡물이 자하문터널 위쪽에 해당하는 위치에서 복개 구조물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을 볼 수 있다. 
백운동천(白雲洞天) 각자바위는 교회 앞을 지나 산속으로 50여미터 더 올라가면 오른쪽 산기슭에 있다. 백운동천의 발원지를 보고자 한다면 계곡을 따라 더 올라가야 한다. 계곡의 끝은 철조망으로 막혀있다. 그 위쪽은 현재 종로문학도서관 건설현장 입구다.
[서울이야기]  백운동천(白雲洞川), 자하문로에 묻힌 청계천 본류
많은 비가 내리자 백운동천 최상류 백운동 계곡에 거센 물줄기가 형성되었다.(위) 왼쪽은 백운동계곡 입구 바위에 새겨진 ‘백운동천’ 각자./사진=선주성 시티스토리 편집장
 많은 비가 내리자 백운동천 최상류 백운동 계곡에 거센 물줄기가 형성되었다.(위) 왼쪽은 백운동계곡 입구 바위에 새겨진 ‘백운동천’ 각자./사진=선주성 시티스토리 편집장
이날 백운동계곡의 거센 물줄기는 청계천의 뿌리가 어디인지를 생생하게 보여줬다. 청계천의 발원지인 백운동계곡은 인왕산 동쪽 끝, 자하문 터널 위에 있다. 백운동 계곡은 평소에는 지표를 따라 흐르는 물이 거의 없어 입구 암벽에 ‘백운동천(白雲洞天)’ 각자가 없다면 물줄기라고 알아보기 힘들 정도다. 이 각자를 새긴 사람은 이 일대를 소유했던 동농 김가진선생이다.

탐사팀은 백운동천 발원지에서 다시 물길을 따라 청계광장까지 걸었다. 청계천의 뿌리를 확인한 뒤, 다시 청계천 시작점까지 머리 속에서 물길을 복원하기 위해서다.

청계천의 본류인 백운동천 물길은 이미 일제시대 복개되어 도로로 사용되고 있어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 있지 않다. 사람들은 일상 생활에서도 물길을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내가 지나가는 길 밑으로 600년 전 조선이 한양에 수도를 정할 때에도 흐르던 물길이 지금도 흐르고 있다는 것을 알면 서울의 역사와 생활문화를 더 잘 이해하고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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