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도성 (서울성곽)

게시자: 알 수 없는 사용자, 2013. 10. 19. 오전 1:00
조선 태조 이성계는 한양에 도읍을 정하고 1396년(태조 5년) 한양 둘레에 18km의 성을 쌓았습니다. 경복궁, 종묘, 사직단의 건립이 완성된 후 정도전의 도성 축조계획에 따라 수축됐으며, 평지는 토성으로, 산지는 산으로 축성됐습니다.

태조는 공사를 위해 1, 2월 농한기에 전국에서 11만8000명을 동원했습니다. 이때 대부분의 공사가 끝났고, 가을 농한기에 다시 전국에서 7만9000명을 동원해 나머지 공사를 끝냈습니다. 4대문과 4소문이 준공됐습니다.
 
세종은 1422년에 다시 대대적인 보수확장공사를 하여 흙으로 된 구간을 모두 돌로 바꾸었습니다. 세종은 전국에서 약 32만 명의 인부와 2000여명의 기술자를 동원했습니다. 당시 서울 인구는 약 10만 명이었습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 국란이 있은 뒤, 숙종은 훈련도감·금위영·어영청 3군영을 동원해 다시 대규모로 성곽을 정비했습니다. 숙종은 이 시기에 북한산성을 쌓아 도성의 방어체제를 정비했습니다.

1899년 서대문과 청량리 사이에 전차를 부설하면서 동대문과 서대문 부근의 성곽 일부가 헐려 나갔습니다. 이듬해에는 용산과 종로 사이 전차 부설을 위해 남대문 부근이 없어졌습니다. 일제강점기에 북악산, 인왕산, 남산, 낙산의 능선을 잇는 성곽과 성문은 훼손되어 일부만 남았습니다. 지금 이 성곽을 '서울성곽'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1970년대 중반부터 서울 성곽 복원계획에 따라 삼청지구, 성북지구, 광희지구, 장충 남산지구, 청운지구가 차례로 복원됐습니다.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 들어 삼선지구와 동숭지구가 새 모습으로 단장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