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 > ‎

강성모 KAIST총장"맞춤형 인재, 너무 좋아하지 마라"…"대학도 CSR해야"

게시자: 남호준, 2014. 7. 3. 오후 10:26
박근태 기자 | 2014/05/21 13:00:00

 
“온라인 공개 강의, 지식 지평 넓히고 대학 경쟁력 높여”
“맞춤형 인재는 한시적 인재관, 장기적으로 기업에 도움 안돼”
대학의 경쟁력은 ‘살아있는 공학이자 과학’인 졸업생

 

한국과학기술원(KAIST)이 이달 12일 첫 온라인 대중 공개 강의(MOOC)를 공개했다.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바쁜 대학이 새삼스레 온라인 강의를 시작한다는 소식에, 교수 사회가 “학생을 키우기도 벅찬 우리 대학 현실에 그럴 여유가 있겠느냐”는 반문이 꼬리를 물었다.

이제 우리 대학들도 학생 교육과 연구에만 매진했던 틀에서 벗어나 지식의 지평을 사회에 되돌리는 첫 시도라는 평가도 나온다.

KAIST 개혁과 새로운 위상정립을 주도하고 있는 강성모(69·사진) 총장은 “기업이 사회적 책임(CSR)을 느끼고 사회에 이익의 일부를 환원하는 것처럼 대학도 이제 사회적 책임을 가져야 한다”며 “한국 대학들도 이런 의식을 갖지 못하면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나지 못한다”고 말했다.

강 총장은 앞서 올해 1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올해 다보스 포럼에 국내 대학 총장 중 유일하게 초청돼 KAIST가 추진하는 온라인 강연 구상을 각국 기업인과 대학 총장들에게 밝혔다. 첫 온라인 강연을 공개한 하루 뒤인 이달 13일 대전 유성 KAIST 총장실에서 강 총장을 직접 만났다.

―다보스 포럼에서 KAIST 온라인 강연 구상을 밝히셨다. 온라인 강연이 학교를 사라지게 할 것이란 우려도 있다.

“누구나 새로운 지식에 접근할 수 있는 ‘오픈액세스(open access)’ 개념은 해외에선 보편화된 지 오래 됐다. 예전에는 돈이 있는 사람만 학교를 가다보니 지식에 ‘빈부차이’가 생겼다. 하지만 온라인이라는 좋은 기술도 나와 있고 대학들도 새로운 개념의 부가가치를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다. 만일 KAIST가 있는 대전에서 창업을 하고 싶지만 관련 지식이 부족한 사람이 있다고 치자. 이런 사람들이 온라인 강연을 통해 다양한 전문가들이 전하는 지식을 얻는다면 얼마나 유용한 일인가. 온라인 강연을 만들어서 학교가 위험에 빠졌다고 주장한다면 그런 학교는 오래 가지 못하는 학교다.”

―대학이 왜 온라인 강좌에 힘을 쏟아야 하나.

“온라인 강연이 돈이나 시간, 사람이 많이 들어가는 건 사실이다. 과정을 끝까지 마치는 사람도 많지 않다. 하지만 나는 대학의 사회적 책임이란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본다.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이 일부를 사회에 환원하듯 돈을 버는 나라들의 대학도 마찬가지다. 온라인 대중 공개 강의(MOOC)에 참여하는 대학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국내 대학 여건을 보면 학생을 키우고 연구하기에도 벅차다고들 한다. 온라인 강연을 통해 대학이 얻는 게 무엇이 있나.

“일부 학교에서는 경영학석사(MBA) 과정을 유료로 운영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온라인 강연이 실제 연구와 대학 교육에 보탬이 되는 사례가 속속 보고되고 있다. 미국 하버드대와 매사추세츠공대(MIT)가 공동 개설한 ‘에드엑스(edX)’에 참여한 한 MIT교수는 수년간 공개된 온라인 강연에서 쏟아진 질문을 토대로 실제 MIT 학생들을 가르칠 때 활용한다고 했다. 온라인을 통해 학교는 좋은 커리큘럼을 외국 학생에게 소개하고, 그들로부터 반응을 되돌려 받으면서 성장하는 구조라고 보면 된다.”

KAIST는 세계 107개 대학이 참여하는 온라인 공개 강연 컨소시엄 ‘코세라’와 이달 12일 첫 온라인 공개 강좌로 김양한 기계공학과 교수가 진행하는‘음향학’을 공개했다. 이달 26일에는 물리학과와 바이오 및 뇌공학과, 산업디자인학과가 함께 만든 융합교과인 ‘빛·색채·삶’, 내달에는 김보원 경영공학부 교수의 ‘공급망관리(SCM)’을 잇따라 공개한다. KAIST가 가진 연구 역량을 바탕으로 KAIST만의 색깔을 내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돋보인다.

-서울대와 함께 동영상 공개 강좌를 추진하기로 했는데 앞으로 어떻게 발전하나.

“지난해 오연천 서울대 총장과 양해각서(MOU)를 맺고 두 학교의 발전을 위한 포괄적 협력을 함께 하기로 했다. 동영상 공개 강좌도 그 안에 포함돼 있으며 구체적인 일정은 아직 협의 중이다. 물론 영어로 하는 것을 기본 원칙으로 한다. 해외 학생들에게 KAIST만이 만든 독특한 커리큘럼을 더 많이 경험하게 하려면 의사소통은 어쩔 수 없더라도 영어로 하는 게 맞다고 본다. 다만 일부에서 한국어로 진행해 한글을 알리자는 의견이 있어 교수가 꼭 한국어를 쓰겠다고 원하면 그렇게 할 방침이다.”

-지난 2월 대통령 직속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가 청와대에 공대 혁신안을 보고했다. 공대를 산업계 수요에 맞게 인재 양성과 커리큘럼을 ‘실사구시’형으로 바꾸겠다는 게 요지다. 어떻게 평가하나.

“임팩트가 있고 좋은 안이라고 생각한다. 중요한 건 다양성이다. 대학은 개개인의 개성이 있는 공간이다. 좋은 방향으로 혁신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한쪽으로 쏠리면 안된다. 단적인 예로 필요한 인재상만 해도 기업도 규모에 따라 원하는 게 다르다. 큰 기업도 있고, 작은 기업도 있다. 잘 봐야 한다.”

-공대 혁신안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산업 수요에 맞는 인재육성을 강조한다. 하지만 대학 본연의 인재 육성은 달라야 한다고 하는 지적도 많다.

“벨연구소에 근무할 때 보면 미국은 큰 회사들이 전공을 보지 않고 머리 좋은 사람이면 무조건 뽑는다. 기술 트렌드가 빠르게 바뀌면서 장기적으로 써먹을 인재가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초가 중요하다. 기초가 튼튼하면 재교육을 통해 얼마든지 기업도 계속해서 인재를 쓸 수 있다. (국내 기업들은)요즘 재교육을 하기보다 우선 데려다 쓸 사람부터 찾고 있는데 바람직하지 않다. ‘맞춤형 인재’는 그래서 위험한 개념이다. 당장 써먹겠지만 결국 나중에는 기술 트렌드가 바뀌면 쓸 데가 없다. 그렇다고 유행이 지났다고 뽑은 직원들을 버릴 건가. 그래서 공학 교육에 균형감이 필요하다고 본다. 나무를 보면 언제나 뿌리가 원동력이듯 기본이 먼저고 애플리케이션(응용)은 그 다음이다.”

-공학 교육을 현실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외면하긴 힘들다. KAIST가 하고 있는 방식이 있다면 소개해 달라.

“요즘 공대에서 창의적 아이디어와 공학 지식을 결합해 문제를 해결하는 교육방식인 ‘캡스톤디자인’ 과정을 가르친다. 대부분 학교에선 교수의 머리에서 나온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가 수업을 하기 때문에 추상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KAIST에선 대신 중소기업들이 겪는 문제를 이 과정에 도입하려고 한다. 중소기업들이 생산 과정에서 겪는 다양한 크고 작은 문제를 학생들이 아이디어를 모아 직접 해결하는 방식이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실제 문제를 해결한다는 측면에서 교수와 학생들이 얻는 게 많다. ‘리얼 월드(real world·실제 세계)’문제만큼 좋은 교재는 없다.”

-한국의 공학이 지나치게 유행을 탄다는 지적도 나온다. 

“논문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한국 공학 논문은 어떤 산업이 커지면 더 나오지 않는다. 연구를 더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산업이 계속 발전하면 그에 따라 문제도 발생하는데 연구 현장에선 별로 관심이 없어 보인다. 이미 성장했거나 유행이 지난 산업에서도 얼마든지 새로운 방법론이 나올 수 있고 문제 해결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엔지니어링 사이언스라고 부르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사이언스나 네이처 같은 국제학술지에 논문을 쓰지 않고, 산업체 경력만으로 공대 교수를 뽑는다고 한다. 대기업 출신만 뽑거나 기준이 모호하다는 우려도 있는데.

“KAIST는 이미 물리학과에서 중소기업에서 활발히 연구활동을 하던 여성엔지니어를 교수로 뽑았다. 중소기업에서 연구를 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그것만으로도 앞으로 학생들에게나 학교에 좋은 역할 모델이 될 것이다. 산업 경력을 바탕으로 박사 과정을 밟으러 오는 사람도 있는데 오히려 박사를 안 하는 게 나은 경우도 있다고 생각한다.”

-최근의 흐름을 보면 대학 평가 방식도 바뀌어야 할 것 같다.

“대학 평가에서 가장 중요한 건 논문도 교수 수도 아니다. 오히려 더 큰 가치는 학교를 마치고 사회나 학계로 진출한 졸업생이다. 졸업생은 ‘살아있는 과학이자 공학’이다. 졸업생이 도전성과 창의성을 가지고 사회로 나아가 어떤 일을 하고 무엇을 잘 한다는 외부에서의 평판이야 말로 학교에 최대로 기여하는 것이고 최대의 가치라고 생각한다. 현재의 대학 평가 랭킹에 얽매이지 말고 다양성을 추구하는 것이 중요하다.”

-요즘 대학은 창업 열기가 달아오르고 있다. KAIST도 예외는 아닌 것 같다. 학점이나 향후 경력을 고려하지 않고 대학에서 너무 창업하라고 등 떠미는 것 아닌가.

“학교에서 공부하지 말고 창업하라고 등 떠미는 건 결코 아니다. 다만 어떤 학생은 내성적으로 연구하는 걸 좋아하고, 어떤 학생은 아이디어로 돈을 버는 일에 관심이 있다. 그런 학생들이 학교를 떠나더라도 후회하지 않도록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자는 것이다. 학교에서 예비창업가를 꿈꾸는 학생들을 위한 과정에 학점을 부여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것도 학생이 스스로 자신이 나아갈 길을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을 열어주겠다는 것이다.”

-KAIST 성장 모델을 흔히 자주 비교되는 미국의 MIT나 카네기맬론대가 아니고 스탠퍼드대라고 말씀하셨다.

“스탠퍼드대가 있는 실리콘밸리를 비롯해 미국 서부 지역에는 실리콘밸리를 비롯해 미국항공우주국 제트추진연구소(JTL)도 있는데 공통적으로 다원성을 인정하는 개방적인 전통이 있다. 교수와 학생간에 격이 없고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교환한다. 글로벌 회사인 휴렛패커드(HP)도 학생이던 휴렛과 패커드를 스탠퍼드대 프레드 터만 교수가 전폭적으로 지지해준 덕분에 생겨났다. 학문이나 창업이나 개방적인 문화가 중요하다고 본다.”

-개성을 존중하는 다원성을 많이 강조하셨다.

“벨연구소에 근무할 때 보면 독특한 사람들 많았다. 문을 걸어 잠그고 하는 연구자도 있고, 문을 열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사회성이 부족한 것처럼 보이는 괴짜들도 많다. 하지만 연구 성과는 비슷하게 나온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슷비슷하지만 ‘아웃라이어’들의 역할도 크다. 그런 아웃라이어들도 끌어안는 다원성은 어릴 때부터 길러진 좋은 태도에서 나온다. 그러려면 어머니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아이들의 개성을 존중하고 잘 키우도록 해줘야 한다.”

강성모 총장은
서울 경신고를 졸업하고 연세대 전자공학과 4학년때인 1969년 미국으로 건너가 버클리대에서 공학박사를 받은 뒤 미국 AT&T 벨연구소 연구원, 일리노이대 어바나 샴페인대와 미국 샌타크루즈 캘리포니아대 공대학장을 거쳐 미국 거주 한인 최초로 4년제 대학인 머시드 캘리포니아대 총장을 지냈다.
강 총장의 별명은 ‘부드러운 선장(Captain Smooth)’이다. 강 총장은 공학계 석학으로 인정 받으면서도 학생과 교수 등 학내 구성원과 소통능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강 총장이 학내 갈등이 첨예했던 KAIST로 영입된 주된 이유기도 하다.
강 총장은 평소 “경험을 통해 소통이 매우 중요하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해야 한다”며 “총장으로서 ‘서번트 리더십(섬기는 리더십)’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Copyrights ⓒ ChosunBiz.com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