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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남북] 삼성의 반바지 허용, '쇼'로 끝나선 안 돼

게시자: 이엽, 2016. 7. 10. 오후 10:36
우병현 조선비즈 취재본부장 사진
 우병현 조선비즈 취재본부장
미국 온라인 쇼핑 회사인 자포스(Zappos)는 지난해 3월 150개에 이르는 부서와 중간 관리직을 모두 없앴다. 그 대신 500여 개의 서클을 신설해 1500명의 직원을 여러 개의 서클에 복수로 소속시켰다. 1인당 평균 7.4개 정도 역할을 중간 관리자의 감독을 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수행하는 시스템이다.

연 매출을 10억달러 이상 올리는 자포스가 도입한 신경영 시스템은 '홀러크러시(holacracy)'라고 부른다. 칸막이와 층계가 축을 이루는 피라미드 조직을 대체하는 자율 경영 모델(self-management)의 일종이다. 자포스를 이끄는 토니 시에가 이처럼 홀러크러시를 전사적 차원에서 과감하게 도입한 것은 스타트업 시절로 돌아가기 위해서다. 시에는 1999년 온라인 신발 쇼핑몰인 자포스를 창업해 2009년 세계 최대 온라인 쇼핑 회사인 아마존에 매각하고 전문경영인으로 자포스를 경영하고 있다. 시에는 지난해 홀러크러시를 도입한 직후 "시행착오를 많이 겪고 있지만 직원들을 창업가처럼 행동하게 한다. 또 아이디어 흐름을 빠르게 하고, 협업을 촉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삼성전자가 최근 부장 등 직급 호칭을 없애고 여름에 반바지 착용을 허용하는 등 실리콘밸리식 기업 문화를 적극 도입하고 있다.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이 현시점에서 '관리의 삼성' 대신 밑에서 열정과 아이디어가 샘솟는 '스타트업 삼성'이 절실하다고 판단한 듯하다. 삼성의 이런 시도를 냉소적으로 보는 시각이 꽤 많다. 일부 내부 직원들도 "결국 쇼에 그칠 것"이라며 시큰둥하다. 하지만 삼성의 실험을 응원하고 지혜를 보탤 필요가 있다. 삼성의 혁신 노력은 개별 회사 차원을 넘어 세계 산업계에 불고 있는 신경영 모델을 상징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버드비즈니스리뷰는 최신호에서 자포스를 비롯해 모닝스타·밸브·고어 등 자율 경영 최신 사례를 소개했다. 저자인 이선 번스타인 하버드대 교수는 "글로벌 1000대 기업 중에서 2030년쯤 20% 이상 자율 경영 기법을 부분적으로 도입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면서 자율 경영을 대세라고 봤다.

그런 차원에서 삼성전자는 자포스의 실험적 도전에서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번스타인 교수에 따르면 자율 경영 기법은 사업의 안정성보다 적응성 가치가 더 큰 스타트업이나 게임과 같은 업종에서 효과적이다. 이에 비해 은행, 방위산업처럼 안정성을 중시하는 업종에선 피라미드의 효용성이 높을 수밖에 없다. 자포스는 자율 경영 기법을 전사적으로 도입한 기업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며 성숙 기업 유형에 속한다. 이에 따라 자포스의 시행착오는 향후 자율 경영 모델에 관심을 갖는 모든 기업에 살아 있는 교과서 역할을 할 것이다.

디지털 기술이 촉발한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하려면 조직을 스스로 학습하면서 진화하는 인공지능형으로 바꿀 수밖에 없다. 그런 흐름에 자율 경영 조직 모델은 핵심 키워드다. 이 부회장이 이왕 삼성전자를 확 바꾸려고 칼을 뽑았다면 토니 시에처럼 과감해야 한다. 혁신 리더에게 과감성보다 더 중요한 덕목은 진정성이다. 자포스는 홀러크러시 도입 후 직원 14%가 떠날 정도로 시끌벅적했다. 자포스에 남은 직원들은 홀러크러시 자체보다 시에의 진정성을 더 신뢰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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