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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들은 접속을 원한다

게시자: Pastor HenryW, 2011. 8. 3. 오후 7:01
황목사의 목회서신 (10월 첫째주)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잠언 22:6) 

만일 여러분이 이전의 나이로 돌아가 인생을 다시 살 수 있다면 언제쯤으로 돌아가 살겠습니까? 혹시 13~17살의 청소년기로 돌아갈 의향이 있는지요? 아동심리학자 제임스 돕슨은 이 질문을 통해 아주 놀라운 사실을 발견합니다. 미국인들 대부분이 ‘청춘’으로 돌아가는 것은 좋지만 다시 틴에이져가 되는 것은 원치 않는다는 사실 입니다. 청소년기야말로 미래를 꿈꾸며 준비하기에 가장 좋은 시기인데 이런 기회의 시간을 다시 원치 않는 이유는 바로 청소년기에 우리가 처음으로 겪게되는 인생 고민의 크기와 충격이 너무 ‘심각’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청소년기는 우리에게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사춘기의 ‘성장통’을 겪게 하는 것은 물론 학업과 진로 문제, 인생 가치관의 정립이라는 엄청난 숙제들을 요구 합니다.

     미국 이민 현장을 사는 우리의 자녀들은 과연 청소년기를 어떻게 보내고 있을까요? 그동안 엄마 아빠의 말이라면 무조건 잘 듣고 따르던 아이가 갑자기 부모와 거리를 두고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보다는 혼자 인터넷을 붙들고 있거나 아니면 밖으로 돌며 친구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이유는 무얼까요? 요즘 미국사회에 마약, 섹스, 폭력이 난무한데, 이 ‘위험 천만한 청소년기’를 지나는 아이들을 우리는 어떻게 이끌어 줄 수 있겠습니까?

     청소년을 돕는 여러 이론들이 많이 나와 있지만 대부분은 이들의 마음을 잘 살피어 그 심정을 공감적으로 이해하고 그들의 입장에서 대화의 물꼬를 틀어 접근하라고 제시합니다. 공감적 이해란 나의 판단과 주장을 잠시 보류하고 상대의 생각, 기분과 소망에 대하여 그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고 반영해주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 공감적 이해를 위해 꼭 필요한 구조적 이해의 작업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상대방이 어떠한 세계관과 가치관으로 삶에 임하고 있는지를 살피는 일입니다. 상대의 가치관과 사고를 살필 때에 그의 기분이 어디서 비롯되는지 알게 되며 현재 당면한 갈등과 충돌을 해결할 방법도 함께 찾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미국에 사는 청소년들은 과연 어떠한 가치관을 갖고 살고 있을까요? 제러미 리프킨는 “The Age of Access"라는 책에서 현대 사회가 ‘소유’의 시대를 넘어서서 ‘접속’의 시대로 넘어가고 있음을 주장합니다. 근대문명이 자본주의를 발전시키며 사람들로 하여금 필요하고 좋은 것들을 ‘소유’하도록 이끌어 왔다면 기술문명이 발달하고 변화의 속도가 빨라진 탈근대문명사회에서는 상품을 소유하기 보다는 ‘사용’하는 방향으로 옮겨간다고 합니다. 사실, 이민현장만 보더라도 어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미국에 온 부모 세대는 열심히 일해 자식을 좋은 학교 보내고 전문 지식을 축적하게 하여 좋은 직장과 튼튼한 재정기반을 마련하여 더 많은 것을 ‘소유’하게 하는데 큰 관심이 있습니다. 하지만, 자식들은 가치관을 달리합니다. 지식과 정보는 인터넷에 이미 널려 있고 물건들도 렌트(리스)해서 ‘사용’만 하면 되지 꼭 소유해서 내 것으로 만들 필요가 없습니다. 이들에게 더 중요한 것은 좋은 것을 ‘소유’하기 보다는 어떻게 하면 그것에 잘 ‘접속’하여 사용하느냐의 문제이지요. 이런 1.5세, 2세대들의 ‘접속희구’ 열망은 심리내적으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은 ‘자기’(self)의 공허함을 채워줄 대상을 찾아 접속하기 원합니다.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과의 의사소통과 나눔, 자기반영의 교류야말로 심리적 필요를 채우는 정신적 산소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부모세대가 자식 교육을 위해 미국에 와서 아무리 ‘뼈빠지게’ 일을 한다하더라도 자식과 ‘접속’하여 사랑의 대화를 나눌 시간조차 갖지 못한다면 청소년들은 그 대상을 찾아 밖으로 돌거나 인터넷공간에서 그 필요를 채울 수 밖에 없습니다. 청소년이 쉽게 마약이나 섹스, 폭력의 문화에 빠져 들어가는 것도 가정내에서 채우지 못하는 접속의 결핍에서 비롯되는 것이지요.

     가족치료자 버지지아 사티어의 말처럼 “가족은 (하나님의 뜻아래) 참된 인간을 만들어 내는 공장”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창조할 때에  하나님의 형상을 주셨는데 우리에겐 그것을 담을 그릇이 필요 합니다. 가정은 바로 이 그릇, 즉 아이들의 자아를 만들어 주는 공장이지요. 어떤 모습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담도록 돕겠습니까? ‘소유’에 집착한 일그러진 형상으로, 아니면 사랑으로 ‘접속’되고 연결된 아름다운 자아를 통해? 황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