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장
성장과 함께 하는 풍성한 열매
성장과 함께 하는 풍성한 열매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교회로 등장하였다. 교회는 성장에 따라 풍선한 열매를 거두고 있는데 후기성도들이 거두고 있는 열매는 과연 어떠한 것들인가? 그리고 이들은 과연 어떤 영향력을 갖게 되었는가를 살펴보기로 하자.
1. 유토피아를 향한 종교운동으로 인식됨
후기성도들은 하나님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예언자적 사명을 띤 젊은이 조셉 스미스에게 나타나셨고 선지자와 사도를 기초로 하는 교회를 다시금 세우셨으며 산 자뿐만 아니라 죽은 선조까지를 구원하기 위한 권능과 계시와 복음을 완전하게 회복하셨고 예언과 계시는 교회안에서 계속적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세상에 새로인 소개된 이 참신한 종교는 사람들의 편견과 오해와 왜곡으로 인하여 종교적 자유가 세상 어떤 곳보다도 보장되어 있는 땅에서 엄청난 박해와 고난을 겪었으며 그 결과로 수천명이 목숨을 잃었다.
초기의 후기성도 신자들은 동부의 뉴잉글랜드에서부터 중서부를 거쳐 록키산맥 가운데 오지인 유타까지 쫓겨갔다. 이들은 19세기 한 때는 사회에 위험한 존재로 잘못 인식되기까지 하였으나, 시련을 극복하고 근면과 창의로써 험한 땅을 기름지게 가꾸고, 학교를 세우고, 거대한 복지제도를 만들고, 기업을 일으키고, 세상의 정치마당에까지 참여하였다. 이와 같은 노력의 결과 이제는 그 규모와, 경제적인 부와, 영향력 면에서 다른 사람들이 전혀 무시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종교적, 사회적 집단으로 성장하였다. 그리고 이제는 미국사회가 당면한 여러가지 문제점들, 예를 들면 가정파괴, 이혼, 동성연애, 성적 타락과 알코올중독, 마약복용, 그리고 청소년범죄가 가장 적어서 모든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세상에 좋게 알려진 그 이상의 일을 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미국의 종교다원주의 덕분에 평화롭게 지내는 또 하나의 부유한 종교로서가 아니라 다가오는 미래에 가장 이상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새로운 종교운동으로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내세와 아울러 현세를 중시하는 몰몬은 천국에의 행복을 약속하면서도 지상에 유토피아를 건설하고 있다. 몰몬은 영감적인 지도자들에게 순종하고, 상호간에 강한 유대를 맺으면서 교회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십일조를 정확하게 바치며, 열정적으로 선교사업에 참여하고, 교리에 따라 신자들을 바르게 가르치면서 지상에 유토피아를 세우기 위한 활동을 열심히 전개하고 있다. 윌리암 맥코드(William M. McCord)는 그가 쓴 <유토피아로의 항해 (Voyages to Utopia)>라는 책에서 서술하기를, 전통적인 종교나 교회는 소속된 사회에 영향을 줄 만한 유토피아를 만드는데 실패하였으나 두개의 주변 교파가 그것에 성공하고 있는데 그 두 교파는 '몰몬'과 '퀘이커'교도들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몰몬의 성공사례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후기성도(몰몬)의 성공을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 종교 운동이 처음에는 하류계층의 농부들에게 흥미를 불러 일으켰으나 결국에는 수많은 나라에서 광범한 지지를 얻는 세계적인 종교운동으로 확대되었다. 이 후기성도의 종교운동은 경제적인 성공을 고무시키는 윤리를 바탕으로 하여 항상 풍성한 열매를 거두었다. 어떤 사람들은 몰몬이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어떤 다른 종교보다도 많은 백만장자를 키워냈다고 주장한다. 십일조의 정책은 교회로 하여금 확실한 재정적 기초를 갖게 했으며 이것은 다시금 교회로 하여금 부동산과 기업과 공장과 농장을 갖게끔 만들었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는 신자 1인당 부로 보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교회로 불려지게 되었다. 또한 1982년 윌리암 케파트(William Kephart)는 "신자수, 성장률, 경제적인 부, 헌신성, 교육열, 활력 등등 어떤 기준을 갖다 대더라도 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는 기록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면 이와 같은 유토피아적 종교운동이 성공하게 된 요인은 무엇인가? 사회학자들은 말일성도가 종교사회운동으로서 성공할 수 있는 여러가지 특성을 풍부하게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말일성도는 위로 대관장, 십이사도회로부터 아래로 교구와 개별교회에 이르기까지 명확하게 짜여진 조직을 갖고 있다. 또한 교리가 명쾌하게 정의되어 있어 그에 대한 혼란이나 분쟁이 일어나는 일이 없다.
도덕적 기준에 어긋나는 행동에 대해서는 파문과 경고조치를 확실하게 취한다. 예를 들어 간통을 하였거나 동성연애를 하는 사람에게는 분명하게 파문조치를 취하고 다시금 회개할 기회를 준다. 회개하지 않는 회원에 대하여는 친구관계나 거래관계가 끊어진다. 교회는 젊은이에게 헌신적으로 선교사업을 하도록 가르친다. 그리고 개종자에게는 절대로 굶주리지 않도록 복지제도를 가동시켜 물질적인 도움을 충분히 준다.
처음부터 교회는 산업화에 따라 생겨나는 가난한 신자들에게 영적인 보상과 더불어 물질적인 부를 나눌 수 있는 여러가지 장치를 마련하였다. 다시 말하면 몰몬이즘은 단순한 종교운동이 아니고 물질적인 그리고 사회적인 면까지 영향을 미치는 포괄적인 종교운동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몰몬 사회가 번영함에 따라 교회는 중산층의 회원들로부터 충분한 재정적인 협력을 얻게 되었으며 성도들은 경제적인, 정치적인 그리고 신분적인 지위를 단계적으로 높일 수 있었다. 하버드 대학교 경영대학 교수인 로자베스 캔터(Rosabeth Kanter)는 몰몬은 유토피아적 실험에 성고할 수 있는 필수적인 제도를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 예로서 중앙집권적인 지도력, 명쾌한 교리, 확실한 개종기준, 훌륭한 신앙인을 선별하는 방법, 잘 준비된 절차와 규정, 소속감을 키우도록 노력하게 하는 일련의 요구사항을 그는 들고 있다.
캔터는 19세기의 유토피아적 사회에서 성공하기 위해 필요했던 것으로 몰몬의 질서 감각을 아울러 거론하고 있다. 그는 혼란스럽고 계획 없는 큰사회와 대비하여 유토피아적 사회는 적절한 조정과 통제가 이루어지는 사회로 특징짓는다. 그런 사회는 구성원에게 인생의 의미를 찾아주고 목적을 제대로 인식케 하며 이러한 목표를 사회 전체가 함께 추구해 나가는 것인데, 성공을 위해 필수적인 이런 조건들은 주류파 종교에서는 발견 하기가 어렵다고 주장한다.
2. 슈퍼 아메리칸으로 등장한 미국성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 1백60여년의 역사를 세가지 시대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제1기는 1830년 교회 설립에서부터 1900년까지의 19세기 시대인데 이 시기는 미국 문명과 문화의 본류에서 소외된 문자 그대로 고난과 시련과 박해의 시기였다.
이 시기는 동부의 뉴잉글랜드 지방으로부터 오하이오주 커틀랜드와 미주리주로 쫓기고 다시금 일리노이주 나부로 밀리고, 종국에는 그곳에서 강제로 추방되어 록키 산맥 한가운데인 유타로까지 쫓겨가는 시대였다. 이 시기에는 옛날 구약의 아브라함이나 야곱이나 모세, 다윗 또는 선지자 사무엘의 아버지인 엘가나의 시대에 일부다처가 불가피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외부로부터 고립된 사회에서 남자와 여자 숫자가 차이가 남에 따라 일부다처가 불가피하던 시기였다. 그러나 외부세계는 이와 같은 후기성도사회에 대하여 극도의 적대감을 가지고 편견과 오해와 왜곡을 증폭시켰던 시대였다. 그러나 1890년에는 일부다처제의 종결이 선포되었고 교회 지도자들은 일부다처제를 실질적으로 금지시키고 이를 어기는 자들에 대하여는 파문조치를 취하였다.
제2기는 1900년에서부터 1950년까지로서 후기성도가 미국 문화와 문명의 본류에 동화되고 수용되는 시대다. 이 때는 19세기와 같은 적대감이 누그러지고 정직, 도덕성, 근면, 성실 등 후기성도의 좋은 점이 드러나는 시기가 된다. 제3기는 1950년 이후 현재에 이르는 시기로, 교회가 미국 내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세계적으로 눈부시게 성장, 발전하는 시대로서 몰몬이 미국 사회가 본 받아야 할 '수퍼 아메리칸'으로 등장하는 시기다. 제3기에 들어와서는 몰몬은 단순히 건전한 가치관을 가지고 미국의 서부지역에서 커다란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또 하나의 기독교 종파가 되는 단계를 뛰어넘어 세계적인 종교를 지향하고 있다. 그 회원들은 이제는 국가경제에 실질적 영향을 미치고 최고 경영층이나, 힘을 가진 국회의원, 준입법 준사법적인 행정위원회 위원, 고위 행정부관리, 군의 최고지휘자로까지 활약하고 있다. 신앙심이 강한 이 신자들은 현재의 미국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구원자적인 위치에 있을 만큼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과거 후기성도들은 미국의 연방정부로부터 심한 탄압을 받기까지 하였으나 오늘날에는 수없이 많은 후기성도들이 정부와 민간기업 그리고 군의 가장 높은 직책에 진출해 있다.
유타 최대의 신문인 데저렛 뉴스(Deseret News)사가 발행한 1983년판 교회연감에 의하면 1982년 10월 당시까지 미국 정부의 최고위 직책에까지 올라간 몰몬 신자의 수는 장관이 7명, 연방 상원의원이 12명, 연방 하원의원이 33명이었다. 1992년 11월에 실시된 103차 연방상원과 하원의원 선거에서는 다음과 같이 3명의 후기성도 상원의원과 10명의 후기성도 하원의원이 당선되었는데 인구비례로 보아서 말일성도들이 많이 진출하였다. 연방 상원의원
+ 해리 레이드(Harry M. Reid) 네바다주 민주당 + 오린 해치(Orrin G. Hatch) 유타주 공화당 + 로버트 베네트(Robert F. Bennett) 유타주 공화당 연방 하원의원 + 하워드 맥키언(Howard P. Mckeon) 캘리포니아주 공화당 + 왈리 허어저(Wally Herger) 캘리포니아주 공화당 + 존 두리틀(John T. Doolittle) 캘리포니아주 공화당 + 로날드 패커드(Ronald Packard) 캘리포니아주 공화당 + 에니 팔레오마배가(Eni F. H. Faleomavaega) 미 사모아 민주당 + 마이클 크레이포(Michael D. Crapo) 아이다호주 공화당 + 딕크 스웨트(Dick Swett) 뉴햄프셔주 민주당 + 어네스트 아이스투크(Ernest J. Istook) 오클라호마주 공화당 + 제임스 헨슨(James V. Hansen) 유타주 공화당 + 빌 모튼(Bill Morton) 유타주 민주당 총인구에 대한 몰몬신자의 비율이 미국보다 큰 뉴질랜드에서도 국회의원인 벤 카우치(Ben Couch)와 같은 후기성도는 1983년 경찰 및 마오리 담당장관으로 임명되었다. 최근 교회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영국이나 중남미 국가에서는 국회의원이나 정부 고위직에 진출하는 영향력 있는 몰몬신자가 늘어나고 있다.
1990년 영국에서는 테리 루티(Terry Rooney)라는 몰몬신자가 처음으로 노동당 소속 하원의원으로 진출하였다. 또한 과테말라의 라파엘 가스띠요(Rafael Castillo)와 같은 몰몬신자는 유엔 대사를 지내고 국회의원이 되어 국회의장을 역임하였다. 우루과이의 국회의원으로 후기성도인 루이스 알베르또 페리초(Luis Alberto Ferrizo)와 같은 사람은 2백50명의 신학연구원 학생들을 대통령에게 안내하여 "각하는 자주 우루과이의 장래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여기 우루과이의 장래가 달린 젊은이들을 보아 주십시오"라고 소개할 정도로 영향력 있는 정치인이다.
세인트 빈센트의 독립 영우이며 초대 총리였던 에버니저 테오도어 조슈어(Ebeneezer Theodore Joshua)는 독실한 후기성도로서 그 땅에 세워진 교회의 첫번째 지부장을 역임하였다. 애국심이 강하고 정직하고 열심히 일하는 특성으로 인하여 많은 후기성도들이 행정부의 영향력 있는 실무부서에서 일하고 있는데 최근 레이건과 부시 등의 공화당 행정부에서는 과거보다 훨씬 더 많은 몰몬신자들이 정책을 결정하는 중요한 자리에서 일하였다. 수도인 워싱턴 지역에는 몰몬의 영향력이 커짐에 따라 신자가 매우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는데 이제는 미시시피 동쪽의 동부지역에서 후기성도가 가장 많이 모여 있는 지역이 되었다. 1992년 5월 16일자 워싱턴 포스트지는 두 페이지 전면에 걸친 종교 특집란에서 워싱턴 지역의 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의 급속한 성장을 보도하면서 회원수는 1980년의 1만6천명에서 1991년에는 2만6천7백명으로 늘어났다고 전하고 있다. 후기일성도가 높은 명성과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곳으로는 먼저 정치분야를 들 수 있다. 1900년대에 유타주가 주 승격을 한 후 리드 스무트(Reed Smoot)가 몰몬신자로서는 처음으로 연방 상원의원이 되어 워싱턴에서 30년 동안 정치가로 명성을 날렸으며 당시 대통령인 캘빈 쿨릿지, 그리고 허버트 후버와 깊은 친분관계를 유지하였다. 리드 스무트는 대공황 시대에 최초의 공황대책으로 제안된 유명한 스무트 할리 관세법안을 통과시킨 장본인이다.
대공황을 해결하기 위해 실시한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 정책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한 사람은 유타의 성공적인 은행가였던 마리너 에클스(Marriner Eccles)였다. 그는 독실한 몰몬신자로서 루스벨트 정부로 하여금 적자 재정을 무릅쓰고 투자를 확대하도록 권고하였으며 1934년에 연방 정부 재무장관으로 임명되었으나 같은 해에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 이사회 의장에 선임되어 17년 동안 이 직책을 수행하였다.
현재의 오린 해치(Orrin Hatch) 연방 상원의원은 품위있고 부드러운 태도를 가진 사람으로서 1980년대 초부터 지금까지 상원에서 활약해 왔는데 내셔널 저널(National Journal)지는 그를 다섯 명의 가장 유능한 젊은 상원의원 중 하나로 선정하였고 1981년 유명한 칼럼리스트인 잭 앤더슨은 의정활동이 가장 뛰어난 10명의 상원의원 중 하나로 그를 지목하였다. 그는 소련과 동구권, 그리고 중국에 선교사를 보내기 위해서 1970년대 후반부터 교회 대표가 각국의 지도자들을 접촉할 수 있도록 주선하였다. 상원의원으로서 처음으로 우주선을 탔던 제이콥 가안(Jacob Edwin Garn)도 역시 후기성도로서, 영향력 있는 여러 상임위원회의 위원장직을 맡아 왔다. 명망있는 신자들을 통하여 교회는 미국정부의 정책 형성과정에 점덤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미국의 중앙정보국(CIA)는 직원 모집에서 후기성도들을 선호한다. 중앙정보국이 직원채용시 꼽는 기준은 외국어 구사 능력, 외국 문화에 대한 훈련, 그리고 외국에서의 거주 경험 등 세 가지인데 몰몬의 젊은이들은 이 기준을 완전히 충족시킨다. 게다가 이 젊은이들은 모든 고용주들이 좋아하는 품성을 갖고 있는데 술과 마약을 입에 대지 않고 정직하고 양심적이며 환경 적응력이 뛰어나고 윗사람의 권위에 복종하며 열심히 일하는 근로윤리(Hard Work Ethic)를 갖고 있는 것이다. 한때 스페인이나 프랑스, 페루 같은 나라에서는 몰몬선교사들이 중앙정보국의 활동을 돕고 있지 않느냐는 의심을 받은 일도 있었다. 그러나 교회는 중앙정보국이 해외 선교사를 비밀 정보원으로 쓰고 있지 않음을 명백하게 밝혔다. 연방수사국(FBI)에서도 직원채용시에 선교사를 마치고 돌아온 정직한 후기성도를 선호한다. 외국어와 관련된 연방수사국의 모든 부서는 그들을 채용하려고 갖가지 좋은 조건을 제시한다.
미국에서 군은 전통적으로 존경 받는 집단의 하나다. 사관학교는 동부의 명문대학 수준으로 입학이 힘들며 상원의원의 추천을 받아야 입학이 가능하다. 대단히 많은 몰몬들이 장교로서 근무하였고 존경받는 유능한 장성들도 많이 배출되었다. 예를 들면 나토(NATO)군 총사령관인 로버트 오우크스(Robert Oaks) 대장과 같은 사람은 독실한 후기성도로서 존경받는 유능한 군인이다. 브리감 영 대학은 미국에서 최대의 ROTC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입단식이나 장교 임관식에는 국방성의 고위인사를 연사로 초청한다.
사법부에서도 각급 법원에서 몰몬신자들이 활약하고 있는데 11개의 연방 고등법원 중 두 곳의 법원장직을 몰몬신자가 맡고 있다. 제9연방 고등법원(U.S. Court of Appeals) 원장직은 헌신적인 후기성도인 클리포드 왈라스(J. Clifford Wallace)가 맡고 있는데 캘리포니아, 네바다, 아리조나, 오레곤, 위싱턴, 아이다호, 몬타나, 알라스카, 하와이, 괌과 북마리아나제도 등 미국에서 가장 큰 지역을 관할하는 고등법원이다. 1991년 9월 제10 연방 고등법원의 판사 다섯명을 대표하는 법원장직에도 헌신적인 몰몬이 임명되었는데 브리감 영 대학교 법과대학 교수를 지낸 몬로 맥케이(Monroe McKay)가 그 사람이다. 몬로 맥케이는 양심의 문제에 대하여 정부가 관여하고 특히 큰 종교집단의 의견을 작은 종교집단에까지 강요하거나 확대 적용하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이다. 후기성도들이 과연 종교활동과 세상일을 어떻게 조화시키는 사람들인가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예로서 몬로 맥케이의 경우를 잠깐 살펴보기로 하자.
몬로 맥케이는 1991년 9월 16일에 임기 7년인 제10 연방고등법원 원장직에 임명되었다. 제10 연방공등법원은 유타, 와이오밍, 콜로라도, 뉴멕시코, 캔사스, 오클라호마등 중부의 여러 지역을 관할하는 법원이다. 그는 잘 알려진 법학자이며 유능한 연설가이자 글솜씨가 뛰어난 사람이다. 그는 유타주 헌츠빌이라는 산마을 동네에서 독실한 몰몬신자의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친과 데이비드 오 맥케이 대관장은 사촌이면서 같은 마을에서 이웃으로 매우 가깝게 지냈다. 몬로는 어렸을 때부터 성경을 비롯한 교회의 경전과 대관장들의 가르침을 읽으면서 많은 영향을 받고 자랐다. 그는 자유 사회에서 개인의 권리를 존중하는 유명한 변호사였던 클래런스 대로우(Clarence Darrow)의 자서전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종교적 다수의 손에 의한 횡포를 깊이 느껴 보았고 권위와 권한을 가진 직책에 있으면서도 소수집단인 몰몬으로 하여금 헌법에 보장된 권리를 누릴 수 있게 하지 못하는 법률가들을 보면서 자라났다. 그래서 그는 법학에 큰 관심을 갖게 되었고, 정부와 공공기관에 근무하면서 사회에 봉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하는 부모와 형제들에게 전적으로 공감하게 되었다. 그의 맏형 건(Gunn)은 브리감 영 대학의 경영학 석사과정을 개설한 사람이고 동생 배리(Barrie)는 솔트 레이크 시티에서 변호사를 개업하였다.
그는 1946년부터 2년간 해병대에서 근무한 후 남아프리카에서 2년간 선교사로서 봉사하였다. 1957년 브리감 영 대학을 졸업하고 명문인 시카고대학 법과대학원에 입학하여 1960년에 변호사 자격을 획득하였다. 그 후 그는 전통적인 몰몬 집안이 아닌 개종자 루시와 결혼하여 9명의 자녀를 키웠다. 변호사가 된 후 그는 아리조나주의 피닉스시에서 개업을 하였는데 거기서 그는 또 한 사람의 독실한 몰몬 동창생이며 유능한 변호사인 렉스리(Rex Lee)와 깊은 교우 관계를 맺게 되었다. 두 사람은 브리감 영 대학교 1학년 시절에 처음 만났는데 렉스 리는 현재는 브리감 영 대학교 총장으로 봉직하고 있다. 렉스 리는 대학교 재학중에 선교사를 나갔기 때문에 시카고대학 법과대학원은 두해 늦게 입학하였다.
1973년 렉스 리는 새로이 설립된 브리감 영 대학교의 법과대학원 원장으로 임명되었으며 그의 취임 즉시 오랜 친구인 몬로 맥케이를 교수로 추천하였다. 렉스 리는 그의 친구 몬로 맥케이가 높은 지적 수준과 더불어 법조인으로서의 전문적인 자질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시야가 넓고 도량이 큰 사람이라고 추천이유를 밝혔다. " 나는 지금까지 그 사람보다 남을 진심으로 생각하고 걱정해주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가장 훌륭한 법률회사의 파트너십(이사자격)을 중간에 버리고 평화봉사단에 봉사하기 위해 아프리카로 간 것을 보면 그가 얼마나 뜻이 크고 관대한 사람인가를 알 수 있다." 1966년에 그는 아프리카의 말라위로 가서 2년간 평화봉사단을 이끌었다. 렉스 리는 "그는 참으로 다른 사람을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구세주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전형적인 사람이다."라고 평가한다. 몬로 맥케이는 3년간 법과대학원에 근무한 후 1977년 지미 카터 대통령에 의해 연방 고등법원 판사로 임명되었다. 이때 렉스 리 총장은 다음과 같이 그를 칭찬했다. " 그는 대단히 신망있는 변호사였기 때문에 그 직책에 임명되었다. 그는 판사가 갖추어야 하는 자질을 모두 갖추고 있다. 그는 공정하고 열린 마음을 갖고 있고 모든 상황을 다 파악하기 전에 미리 결정을 내리는 일이 없고 자기 앞에서 있는 증인과 변호인을 분명하면서도 지극히 존중하는 태도로 대한다." 여가 시간에 그는 책을 읽고 가족과 함께 여러가지 재미있는 활동을 즐긴다. 그는 교회에서 주일학교의 교사를 맡고 있으면서 19세기의 박해시절에 교회에 개종해서 시련과 고난을 이겨낸 스코틀랜드 출신 선조들이 남긴 전설적인 이야기를 조금이라도 훼손하지 않으려고 두려움을 가지고 살아간다고 고백한다.
교육수준이 상대적으로 높은 몰몬들 중에는 우수한 두뇌집단들이 많다. 스테레오를 발명한 하베이 플레처(Harvey Fletcher) 박사나 텔레비전을 발명한 필로 판즈워스(Philo Farnsworth) 등은 모두 유타주 출신으로서 독실한 말일성도였다. 1983년 5월 23일 레이건 대통령은 텔레비전에 나와 '별들의 전쟁(Star Wars)'으로 알려진, 미국과 동맹국을 적의 대규모 공격에서 보호할 거대한 규모의 미사일 방어 시스템개발에 관해 연설한 적이 있다. 이 계획은 동서 냉전의 해소로 인해 결국 실행에 옮겨지지는 않았지만 레이건의 연설이 있자 국방기술연구팀(Defensive Technologies Study Team)이 구성되고 그 총책임자에는 제임스 플레처(James C. Fletcher)가 임명되었고 그 해 10월에는 연구개발계획이 입안되어 와인버거 국방 장관의 승인을 거쳐 대통령에게 제출되었다.
이 제임스 플레처는 닉슨 행정부 시절 항공우주국(NASA) 국장을 지낸 우주기술의 최고 전문가로서 스페이스 제네랄(Space General)사의 사장과 회장을 역임하였고 피츠버그대학의 석좌교수로 재직하고 있던 헌신적인 후기성도이다. 한국 화학계의 태두인 이태규 박사를 유타 대학에 초빙하고 공동연구를 통하여 이(李).아이링 이론을 발견하기도 했던 세계적으로 유명한 화학자인 헨리 아이링(Henry Eyring)은 1973년 유타주 프로보시에 아이링 리서치 센터(Eyring Research Center)를 설립하였다. 이 연구소는 최첨단 전자기술연구소로서 특히 미사일이나 우주선, 로켓의 유도 시스템에 관하여는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를 하고 있다. 당초 이 연구소는 비영리 기관으로 설립되었으나 정부의 연구 요청이 워낙 많아 교회 소유의 영리 법인으로 전환되었다. 이 회사는 브리감 영 대학교의 유능한 공학교수 12명이 고문으로 일하고 있다.
전세계적인 선교 사업망을 갖고 있는 몰몬사회에는 전세계 언어 중 안 통하는 언어가 거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언어를 듣고 배울 기회가 있다. 브리감 영 대학의 언어학자들은 자동언어처리 시스템회사(Automated Language Processing Systems, Inc.)를 만들었는데 휴렛 패커드(Hewlett Packard)나 NCR과 같은 대기업으로부터 거액의 용역 위탁을 받아 세계 각국에 이 번역시스템을 설치하고 있다. 국제적인 활동을 하는 대기업이나 정부기관은 모두 이 회사의 주요 고객이 되고 있다. 1950년대 이후 몰몬들의 정치적, 사회적인 영향력은 엄청나게 커져 왔으나 레이건 대통령 때에 그 절정을 맞았다. 후기성도들은 록키산맥지역(Intermountain West)에서 최대의 정치적인 힘을 발휘하게 되었으며 이것은 전국적인 정치 상황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기에 이르렀다.
여론조사 전문가인 리차드 워스린(Richard Wirthlin)은 레이건의 가장 가까운 보좌관으로서 레이건으로 하여금 여론을 정확하게 파악하면서 국정을 이끌어 가도록 보좌했다. 유타주의 유명한 교육자인 벨(T.H. Bell)은 앞에서 말한 대로 레이건 내각의 교육부 장관을 맡았으며 렉스 리(Rex E. Lee)는 대법원을 상대로 행정부의 법률적인 이해를 다투는 법무차관(Solicitor General)에 임명되었다.
리차드 리차즈(Richard Richards)는 공화당 전국위원회(Republican National Committee) 의장을 맡았었고 마크 캐넌(Mark Cannon)은 대법원장 워렌 버거 밑에서 법원 행정처장을 맡았고 로버트 브로드벤트(Robert Broadbent)는 방대한 예산으로 서부의 수자원을 개발하는 총책임을 진 연방 개발위원회 위원장(Commissioner of Reclamation)직을 맡았다. 이제는 워싱턴의 모든 주요 기관의 영향력 있는 자리에 물몬신자들이 포진하게 된 것이다. 1991년 11월 20일자 L.A. 타임스는 로리 베크런드(Laurie Becklund) 기자가 쓴 기사에서 가정을 중시하고 그 가족을 사랑하는 또 한사람의 슈퍼 아메리칸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를 싣고 있다.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은UC Berkely, UCLA, UC Irvine 등 9개의 주립대학으로 구성되는 미국 최대의 대학집단인데 64억 달러의 예산과 20명의 노벨상 수상자와 세계 최고수준의 연구소를 여러 개 갖고 있다. 9개 대학에는 대학마다 총장(Chancellor)이 있고 9개 대학의 위에는 총장의 총장인 대표총장(President)이 있다.
연봉 24만3천5백 달러를 받는 대표총장은 캘리포니아에서 최고의 급료를 받는 주정부 공무원이며 미국에서 가장 명예로운 직책인데 1983년부터 독실한 몰몬신자인 데이비드 가드너(David Gardenr)가 이 직책을 맡아왔다. 그러나 그는 10년 임기가 다 끝나기 1년 전인 1992년 10월에 사임할 것이라고 발표하였다. 사임에 얽힌 이야기는 사랑하는 아내의 죽음에서 실마리가 풀린다. 1958년에 결혼해서 32년간을 반려자로 함께 살아온 그의 아내 리비( Libby)는 1991년 2월, 55세의 나이에 골수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아내가 죽은 후 대학을 방문한 독일수상 헬무트 콜을 환영하는 자리에 그는 아내 없이 혼자 헬무트 콜 부부를 맞았다. 1991년 11월에 그는 자기가 강력히 추진하여 설치하게 된 케크 망원경(Keck Telescope)이라 불리는 우주의 기원을 밝혀줄 강력한 천체 망원경시설 준공식에서 귀빈들과 그 부인들 가운데 혼자 서서 행사가 끝난 후 외롭게 호텔로 돌아와 독감에 걸린 몸으로 펜을 들어 다음과 같이 사임 편지를 썼다. " 이 편지는 쉽게 쓴 것이 아닙니다.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깊은 감정을 몇마디 단어로 전해야 하는데, 이런 느낌이란 내가 남과 함께 나눌 수 있거나 내가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을 훨씬 뛰어넘는 인생의 원리에서부터 나온 것입니다. 아내가 죽은 후 날이 가면 갈수록 그녀가 없이는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의 대표총장직을 수행할 수가 없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래서 나는 사임하려고 합니다." 이 편지는 아내에 대한 깊은 사랑을 보여주는 순애의 사직서였다. 데이비드 가드너는32년간 함께 살아온 아내가 없이는 도저히 총장의 임무를 원만히 수행할 수가 없기 때문에 미국에서 가장 명예로운 자리를 스스로 포기한 것이다. 가드너 총장은 인간관계를 상쾌하게 유지하는 사람이었는데 가정적 분위기를 깨지 않기 위해 총장공관 입주를 거절하고 자기 집에서 계속 살기를 희망했다. 사임을 발표한 후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아내를 다음과 같이 평했다. "아내는 무척 현명한 사람이었고 실제적인 사람이었고 대단히 조직적이면서도 사랑이 많은 사람이었고, 특히 자기 생애를 가족과 함께하면서 둘이 함께 일하는데 바치기로 작정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아내는 네 딸을 키우면서 남편 옆에서 대학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수많은 사회적인 활동이나 학문적인 행사에서 조용하면서도 우아한 모습으로 총장 부인의 역할을 다했다. 결혼 후 두 사람 사이에는 종교적 가치관의 차이로 인한 논쟁이나 다툼이 한번도 없었다고 총장은 고백하였다. 네 딸 중의 하나인 리사 가드너는 부모의 결혼생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두 분의 결혼생활에는 특별한 것이 있었다고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우리 친구들의 부모에게서는 보기 어려운 그러한 결혼생활이었습니다." 유타대학 총장을 지내고 1983년 캘리포니아대학 대표총장으로 오기 전에 그는 새로운 직책에 대해 아내와 상의를 했고 그 때 두 사람은 직책을 같이 수행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그는 일요일에는 어떤 일이 있어도 아내와 네 딸과 함께 보내야 한다는 것을 이사회에서 밝힌 후 총장에 취임하였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가드너 총장은 아내가 씻은 접시를 말려주면서 업무수행 과정에서 혼자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를 항상 부인과 상의해서 좋은 결론을 내고는 하였다. 가드너 총장은 그의 아내가 상류층 부인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대학에 기부를 흔쾌하게 하는 부인들과도 매우 따뜻한 인간관계를 유지 해왔기 때문에 기부금은 눈에 띄게 늘었다고 말했다.
3. 경제적인 힘을 얻다.
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는 이제 미국에서 가장 경제적인 능력이 있고 강력한 힘을 가진 조직의 하나가 되었음을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이제는 미국의 꿈(American Dream)을 실현할 수 있는 전형적인 모델로 보는 사람들도 있다. 실제로 후기성도들은 부양해야 할 가족이 많으므로 좋은 직업을 가지려고 노력하며, 높은 교육 수준으로 인하여 상위 계층의 직업을 갖는 비율이 높다. 또한 근면하고 정직하며 남과 협동해서 일하는 팀 플레이의 경험을 교회내에서 오랫동안 쌓기 때문에 직장에서 높이 평가받는 구성원이 된다. 1백60여년의 역사를 통하여 몰몬이 가장 풍성한 열매를 맺은 곳은 바로 기업경영과 사업분야다. 크리슨 굿맨(Kristen L. Goodman)과 팀 히튼(Tim B. Heaton)은 1986년 앰캡 저널(AMCAP Journal)에 후기성도의 소득정도를 조사 발표한 바 있다. 이에 따르면 후기성도 가정의 47%는 연봉 2만5천 달러 이상의 소득자이며 9%가 넘는 숫자가 연봉 5만 달러 이상의 소득을 갖고 있다. 이것에 비해 미국 전체 평균은 39.5%가 연봉 2만5천 달러를 넘고 있으며 6%가 연봉 5만 달러를 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포츈(Fortune)지가 정하는 5백대 기업 중 30위 내에 들어가는 이스트만 코닥(Eastman Kodak)사의 케이 휘트모어(Kay Whitmore)회장이나 나비스코(Nabisco)사의 리 비크모어(Lee S. Bickmore) 회장과 같은 성공적인 몰몬은 빼놓더라도 미국의 중산층에게는 일반적으로 몰몬이 경제적인 능력을 가진 사람들로 비쳐지고 있다.
그러나 재미있는 것은 후기성도의 가구당 소득은 전국 평균보다 높으나 자녀수가 두배 정도로 많기 때문에 1인당 소득은 전국 평균보다 낮다. 이 때문에 몰몬은 절약하는 검소한 생활을 한다. 크리슨 굿맨과 팀 히튼은 후기성도들 가운데도 빈곤층이 있음을 아울러 지적하고 있다. 특히 여성이 가장인 가정은 미국에서는 그 3분의 1이 빈곤에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나 있는데 몰몬의 5%가 여성 가장이며 이것은 전국 평균 10%의 절반 정도에 해당된다. 성공적인 몰몬 기업인 중 유명한 사람이 많으나 그 중에서 한 사람만 예를 들어 보기로 하자. 1985년 1월 21일자 비즈니스 위크지는 세계적인 호텔 체인을 운영하고 있는 매리오트(Marriot) 그룹의 회장인 윌러드 매리오트(J. Willard Marriot)를 미국을 대표하는 20명의 경영자 중 한사람으로 선정하고 그를 '도덕적 미국을 위한 십자군 전사(Crusader For a Moral America)'라고 칭찬하는 기사를 썼다.
이 기사는 그가 1년에 32만km 이상을 여행하면서도 가정을 중시하는 생활 태도를 지키고 있고, 매우 검소한 생활을 하며, 바쁜 중에도 많은 시간을 교회와 보이 스카우트 활동과 상공회의소 활동에 바치고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그는 상공회의소의 산하조직으로 7만5천명의 회원이 가입되어 있는 시티즌스 쵸이스(Citizen's Choice)의 의장을 맡고 있으면서 경제 부문에 대한 연방정부의 관여를 줄이기 위한 활동을 전개해 왔다. 한편 그는 미국이 바른 길로 들어서려면 도덕적 문제가 가장 중요하다고 주장하면서 이를 시정하기 위한 여러가지 운동에도 앞장 서고 있다. 몰몬들은 무섭게 일하는 일벌레들 이면서 경제적인 부에 대하여 독특한 철학을 갖고 있다. 이들은 인간의 물질적인 면을 영적인 면과 똑같이 중요하게 생각한다. 몰몬 역사가인 레오나드 애링튼(Leonard J. Arrington)은 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몰몬들에게는 현세적인 일도 영원에 속하는 일과 마찬가지로 중요한 것이다. 이 세상에서의 구원과 다음 세상에서의 구원은 하나로 통하며 동일한 연속적인 발전과정이다. 지상에 시온을 건설하고 문자 그대로 하나님의 왕국을 건설하는 것은 종교적인 가치와 경제적인 가치를 함께 건설하는 것을 의미한다. 말일성도들이 가진 경전은 이 왕국에서 일어나는 매일 매일의 일에서 성도들이 하나가 되고 가난한 자를 돌보고 경제적인 독립을 이룰 것을 강조한다." 경제를 발전시키는 것은 몰몬 신학을 완성시키는 필수적인 부분이다. 조셉 스미스가 받은 1백12개의 계시 중 88개는 경제적인 것과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관계된 것이다. 교리와 성약에는 현세적인 일에 관한 구절이 9천6백14개가 있는데 그중 2천6백18개는 경제와 종교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는 것임을 나타내 준다. 평균적으로 몰몬들 가운데는 사업에 성공한 기업인들이 대단히 많은편이나 교회 자체도 큰 기업군을 갖고 있다. 이에 대해 교회의 제2인자인 고든 비 힝클리(Gordon B. Hinckely) 부대관장은 월 스트리트 저널 기자에게, "우리 교회의 활동중에 기업 경영에 관한 부분은 정말로 미미할 정도로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몰몬교회는 대단히 많은 숫자의 기업을 갖고 있으며 그 투자액이 크고, 투자분야도 매우 다양하고, 수익성이 높은 경영을 하고 있다는 것이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분석이다. 그러나 교회는 기업 활동을 공개하지 않기 때문에 뉴욕 타임스나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아리조나 리퍼블릭 등 여러 신문에서 추적기사를 썼으며 특히 존 헤이너만(John Heinerman)과 앤슨 슈프(Anson shupe)는 1980년대 여러 해 동안 조사를 진행하여 쓴 [몰몬 기업 왕국(Mormon Corporate Empire)]이라는 책에서, 교회는 거대한 기업군을 거느리고 있으며 아무리 작게 잡더라도 교회의 총자산은 1983년 당시 80억 달러에 달한다고 주장하였다. 외부 분석가들은 이것이 바티칸의 부를 훨씬 능가하고 있는 것으로 믿고 있다.
존 헤이너만은 이 책에서 1963년 탁월한 정치인이면서 실업가인 엘든 태너(N. Eldon Tanner)가 부대관장이 된 후 교회의 투자 형태를 획기적으로 바꾸어 눈부신 투자활동을 전개하고 경영 감각이 출중한 전문가를 조직 내에 키워왔다고 밝히고 있다. 교회는 미국 최대의 농장과 목장을 갖고 있는 농업기업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 땅의 크기는 로드 아일랜드주보다는 크고 델라웨어주 보다는 약간 작은 규모로 추정된다. 또한 교회는 다수의 농산물 가공공장과 제분공장을 갖고 있는데 이들 농장과 목장과 공장에서 생상되는 식품은 전세계에 있는 교회의 모든 가난한 신자들을 도와주기에 조금도 부족하지 않은 막대한 양이다. 교회는 주식과 채권 구입, 농장과 목장과 공장 설치, 상업용지와 공장용지개발, 대중매체 육성, 보험과 금융회사 설립 등 광범위한 분야에 투자하고 있으며 1백개 이상의 기업을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교회의 전체 소득도 교회성장에 따라 급속하게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죤 헤이너만은 1962년에 교회의 수입을 3억6천5백만 달러로 추정하였으며 1976년에는 10억9천5백만 달러로, 1983년에는 20억 달러로 추정하였고, 아리조나주 피닉스시에서 발행되는 아리조나 리퍼블릭지는 1990년에 47억 달러로 보도하였다. 이와 같은 수입의 4분의 3은 신자들이 내는 십일조이며 나머지가 사업에 대한 투자수익으로 알려져 있는데 외부의 분석가들은 신자 1인당 교회의 부를 계산한다면 몰몬교회는 미국에서는 물론, 아마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종교라고 믿고 있다. 교회 소유의 우량 기업이 생긴 예를 한가지만 들어보기로 하자. 교회는 1963년 하와이의 라이에(Laie)시에 '폴리네시아 문화센터(Polynesian Cultural Center)'를 설치하였다. 그 목적은 첫째로는 급속도로 사라져 가는 폴리네시아 사람들의 고유예술과 문화유산을 보존하는 것이며, 둘째로는 폴리네시아와 아시아의 개발도상국에서 온 학생들을 교육하기 위해 교회가 특별히 설립한 브리감영 대학교 하와이 캠퍼스의 학생들로 하여금 학비와 생활비 걱정을 조금도 하지않고 공부할 수 있도록 일자리를 마련해 주는 것이었고, 셋째로는 이와 같은 교육 및 문화사업을 통하여 태평양의 작은 섬나라들을 이끌어갈 지도자를 양성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목적을 위해 시작된 이 사업은 디즈니랜드와 같은 대성공을 거두어 엄청난 수익을 올리고 있다. 이 센터는 학생들로 하여금 관광 경험을 체험하게 하고 폴리네이사인의 말과 역사를 보존하며 교회에 대한 좋은 여론을 형성하고 있다. 이 센터는 미국을 방문한 중국의 최고 지도자들인 등소평, 이선념, 조자양조차도 시간을 내서 들를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으며 1988년 1월에는 세계 각국에서 온 관광객들과 함께 25주년 기념 축제를 성대하게 거행하였다. 교회가 발전함에 따라 최근 몇 년 사이에 몰몬이 전주민의 거의 80%를 차지하는 유타주와 유타내의 도시는 경제적인 면에서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다. 1990년 10월 22일자 포츈(Fortune)지는 미국 기업이 새로이 사업을 시작할 수 있는 조건이 가장 좋은 도시 10개를 선정 발표하였다. 이 도시들은 미국 동북부 뉴잉글랜드 지방이나 중부 대서양 연안 지역에는 하나도 없고 주로 미국의 서부나 남부에 산재하여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최고로 꼽히는 도시로 유타주 솔트 레이크 시티가 선정되었다. 포츈지는 뉴욕에 근거를 둔 회사 재배치관련 전문상담회사인 모런 스탈 앤드 보이어(Moran Stahl & Boyer)사와 함께 미국 전역의 50대 대도시 권역의 인력 담당 중역들을 상대로 근로자의 질, 근로자 확보 가능성, 컴퓨터 사용정도, 근로자의 충성심 등 관련항목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행하였다.
또한 노동시장에 나오는 근로자들의 대학예비시험 성적, 고등학교 졸업률, 인구추세, 노무비 등도 감안하였고 최고경영자, 공장장, 인사 책임자, 교육자, 시장, 정부 관리들과의 면접도 병행하여 수백명의 전문가가 의견을 제시하였다. 결국은 세가지 기준으로 집약 시켜 유망도시를 선정하였는데 첫째는 충분한 노동력이 있는가? 둘째는 잘 훈련된 양질의 노동력이 있으면서도 근로윤리가 훌륭한가? 셋째는 지방정부가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정성을 쏟고 인력을 잘 교육시키고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이 세가지 기준에 솔트 레이크 시티는 A+를 맞고 미국에서 기업하기가 가장 좋은 도시로 선정되었다. 2위는 미네아폴리스 세인트폴, 3위는 죠지아의 아틀란타, 다음에는 캘리포니아의 새크라멘토, 텍사스의 오스틴, 오하이오의 콜럼버스, 텍사스의 달라스.포트워스, 아리조나의 피닉스, 플로리다의 잭슨 빌, 오클라호마 시티가 차례로 선정되었다. 미국의 권위있는 금융전문지인 머니(Money)는 미국내 3백개 대도시(Metropolitan Areas)를 조사분석하여 사람이 살기 좋은 도시순위(Best Places to Live Now)를 발표하였다. 이 조사결과를 보면 과거 4년간은 동부와 서부 해안지대에 있는 도시들이 살기 좋은 곳으로 꼽혔으나 1991년에는 록키산맥과 텍사스 그리고 중서부 일대의 도시들이 주로 선정되었다. 1991년에 가장 살기 좋은 곳으로 선정된 도시는 인구 26만명의 자매 도시인 유타주 프로보(Provo)시와 오렘(Orem)시로서 살기가 편하고 세금이 낮고 도시 전체가 경제활력으로 충만해 있는 곳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이 잡지는 프로보시와 오렘시에 대해서 이곳 사람들의 봉급을 다른 곳의 절반으로 깎아도 똑 같은 생활의 질을 유지하면서 살 수 있는 곳이라는 유타주 정부관리 개리 허버트(Gary Herbert)씨의 설명을 곁들이고 있다. 두번째 살기 좋은 도시로는 워싱턴주 브레머튼(Bremerton)이, 그 다음으로는 텍사스주의 브라이언(Bryan), 아이다호주의 보이즈(Boise), 텍사스주의 라버크(Lubbock) 등이 각각 3, 4, 5위로 선정되었다. 미국의 경우 1980년대까지는 경제활동이 동해안과 서해안의 양쪽바다에 면한 지역을 중심으로 활기를 띠었으나 1990년대에 들어오면서는 미국의 중서부 지역에 경제활동이 활발해지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비용이나 원가가 적게 들고 주택사정이 좋은 중서부 지역의 중규모 도시가 강한 경제적 활력을 보여주고 있다.
프로보와 오렘지역은 그 대표적인 도시로서 19세기 중엽에 브리감 영이 몰몬 정착지를 만들 때는 동부에서 개척민들이 모여 들었으나 이제는 반대방향인 서쪽의 캘리포니아에서 사람들이 몰려오고 있다. 이 사람들은 높은 세금과 용수부족, 고속도로 체증을 피해서 범죄율이 매우 낮은 이 곳으로 몰려든다. 1989년 이래 프로보시에는 단 한건의 살인사건도 없었다. 3년 전에 로스앤젤레스를 떠나 이곳으로 이사해 온 24살의 휘어너 맥하디(Fiona McHardy)라는 사람은 "로스앤젤레스에는 스트레스를 피할 수 있는 곳이 없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점심 먹으러 경치 좋은 폭포에도 갈 수 있고 강물에 발을 담그러 갈 수도 있다"고 자랑한다.
프로보와 오렘은 이제는 색다른 경관이 있는 시골 도시가 아니다. 이 지역은 노동력이 풍부하고 최근에는 첨단산업이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는데 현재 80개가 넘는 소프트웨어 회사들이 활기차게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이 중에는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노벨(Novell)이나 워드 퍼펙트(Word Perfect)와 같은 소프트웨어 회사들이 진을 치고 있는데 이들 회사가 자리잡고 있는 공업지역은 '소프트웨어 밸리(Software Valley)'라는 이름으로 명성이 높다. 이 지역 일대는 전국에서 가장 교육수준이 높은 곳이며 젊은이의 94%가 고등학교 이상의 학력을 갖고 있다.
1847년 브리검 영은 "여기가 바로 그 곳이다"는 말로서 록키산맥 중에 있는 황량하고 메마른 지역인 솔트 레이크 시티를 몰몬의 본거지로 선정하였다. 그런데 1백43년 후에 대기업의 중역들이 똑 같은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유타주는 미국내에서 교육열이 가장 높은 곳이며 솔트 레이크 시티는 미국내 어떤 도시보다 외국어 교육이 잘 되고 있는 곳이다. 세계적 신용카드 업체인 아메리칸 익스프레스(American Express)는 전세계 고객들이 신용카드 조회를 할 수 있는 무료전화 서비스센터를 솔트 레이크 씨티에 설치하였다. 왜냐하면 이 도시만이 전세계의 모든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사람들을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1991년 5월 28일자 파이낸셜 월드(Financial World)지는 14개의 기준을 가지고 미국 전체 50개주에 대한 재정 및 예산의 건전성과 효율성을 측정하여 우수한 주 10개와 열등한 주 10개를 선정 발표하였다. 이 조사는 주 예산국에 설문서를 내고 주지사, 학자, 주 재무관료, 연구기관을 면담한 후 이를 다시금 신문기자, 시민단체, 지방의회 의원들을 통하여 확인하고, 주정부 활동에 관한 간행물과 전문지를 활용하는 등 객관적인 방법으로 우수한 주와 열등한 주를 선정하였는데 우수한 주 10개중 가장 좋은 주는 '유타'가 선정되었으며 열등한 주 10개 중 가장 나쁜주는 '매사추세츠'가 선정되었다. 좋은 주는 당연히 기업활동이 유리하고 주민복지가 훌륭하며, 세금이 낮고 실업률도 낮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4. 교회의 부를 선하게 사용
그러면 이렇게 많은 부를 교회는 어떻게 사용하는가? 교회의 수입은 대부분이 선교사업과 성전사업, 그리고 회원의 복지를 증진하기 위한 각종 사업에 쓰여지고 있으며 그 외에 대학과 중.고등학교, 국민학교, 병원 그리고 재난이 발생하는 세계 각 지역의 성도와 이웃에게 보낼 물자를 준비하는 농장 및 가공 공장의 운영을 위해 쓰여진다. 한편 교회는 중남미를 비롯한 개발도상국 여러 나라의 어려운 교회와 빈곤한 성도들을 적극적으로 돕고 있다. 교회는 제3세계에 살고 있는 성도들에게 매년 4백개에 가까운 교회 건물을 지어주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교회는 수입을 선교사업에 우선적으로 투입해 왔다. 세계 각 지역에는 여러 개의 선교사 훈련센터가 설치되어 신교사로 출발하는 젊은이를 교육하고 있으며 전세계 1백46개국에 2백95개의 선교부가 설치되어 성공적인 세계 선교사업을 수행하고 있는 것은 이미 설명한 바 있다.
다음으로 교회의 부는 성전을 짓고 돌아가신 선조의 기록을 찾는 족보사업에 쓰여진다. 성전은 몰몬 신학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여기에서는 교회가 가장 거룩한 의식으로 여기는 돌아가신 선조의 구원을 위한 대리의식과 이 세상뿐만 아니라 영원을 위한 결혼의식을 집행하고 있다. 성전은 세상에서 가장 조용한 곳으로, 명상의 장소이고 기도의 장소이며, 계시와 기적의 장소이며, 전능한 하나님을 가장 강하게 경험할 수 있는 곳으로 생각한다. 성전은 회중이 모이고 예배하고 활동을 갖는 일반 교회건물과는 다른 곳이다. 성전은 대단히 아름답게 지어지므로 대개 그 지방의 뛰어난 관광 명소가 된다.
현재 전세계에는 한국의 서울성전을 포함하여 45개의 성전이 정상 운영 중이고 9개는 건설 중이거나 계획 중인데 앞으로 오래지 않아 수백개의 성전이 있게 될 것으로 후기성도들은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저 세상에 있는 선조가 대리의식을 받아들이는가 않는가는 그들이 선택할 문제로 생각할 뿐 지상에 살고 있는 후손들은 대리의식을 집행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래서 말일성도들은 족보를 찾고 선조를 알아내는 가족역사 사업에 열심인데 이 사업을 선조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는 일로 확신하고 있다. 이를 돕기 위해 교회는 전세계 49개국에 1천5백개의 가족역사센터를 설치하고 솔트 레이크 시티에는 세계 최대의 족보 및 가족역사관련 도서관을 세워 이 사업에 관한 총본부 역할을 담당하게 하고 있다. 또한 수집한 족보기록을 보관하기 위하여 유타주의 그래나이트 마운틴(Granite Mountain)의 암반 속에는 대규모 기록 보관소를 만들고 전세계의 모든 족보 기록을 모아 마이크로 필름이나 콤팩트 디스크로 처리하여 영구 보존한다. 한국 국회도서관 소장의 모든 족보기록 역시 마이크로 필름화ㅏ되어 함께 보관되어 있다. 지금까지 말일성도들은 약 80억명의 선조 명단을 확보해 놓았으며 1억4천7백만개의 성씨에 관한 세계 최대의 전산 데이터 베이스를 구축해 놓았다. 그리고 지금까지 1억이 넘는 선조의 구원을 위한 대리의식을 집행하였다.
후기성도들은 지상에 살았던 모든 사람들은 다음의 성경 구절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이 세상에서가 아니면 다음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을 기회가 있으리라고 믿는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요한복음 5장 25절)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요한복음 5장 28~29절) "저희가 산 자와 죽은 자 심판하기를 예비하신 자에게 직고하리라 이를 위하여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니 이는 육체로는 사람처럼 심판을 받으나 영으로는 하나님처럼 살게 하려 함이라." (베드로전서 4장 5~6절) 따라서 살아 있는 후손들은 이 세상에서 복음을 듣지 못한 선조를 찾아서 대리의식을 집행해야 한다고 믿는다. "만일 죽은 자들이 도무지 다시 살지 못하면 죽은 자들을 위하여 세(침)례 받는 자들이 무엇을 하겠느냐? 어찌하여 저희를 위하여 세(침)례를 받느뇨?" (고린도전서 15장 29절)
성전의식에 관한 사람들의 관심은 놀랍게 커지고 있다. 세계적으로 위식이 집행되고 있는 45개의 성전 중 44번째로 세워진 것은 1987년 10월에 헌납된 콜로라도의 덴버 성전이었다. 19회에 걸쳐 거행된 헌납식에는 주위에서 온 2만8천명의 성도들이 참석하였다. 성전헌납이 있기 바로 전에 주로 비(非)신자들을 위해 3주 동안 열렸던 오픈 하우스에는 14만명의 사람들이 참석하였는데 이 중 60%는 몰몬신자가 아닌 손님들이었다. 방문객이 당초 계획보다 엄청나게 더 많이 몰려들었으며 방문객의 20%정도가 건물에서 열리는 선교전시회에 참석할 것으로 생각했으나 교회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모든 방문객의 반 이상이 전시회를 참관하였다. 이 오픈 하우스에서는 1만7천권의 몰몬경이 비(非)신자에게 팔렸으며 2만7천5백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교회에 관한 더 많은 정보를 알고 싶어서 별도로 준비된 카드에 이름을 적어 넣었다. 1993년 4월 45번째로 완성된 캘리포니아 샌디에고 성전의 경우에는 한층 사람들의 관심이 커져 23회에 결쳐 거행된 헌납식에 5만명의 성도들이 참석하였고 6주 동안에 걸쳐 열린 오픈 하우스에는 72만명 이상의 주민들이 방문하였다. 다음으로 교회의 부는 전세계적으로 굶주리는 성도와 이웃이 없도록 복지사업을 운영하는데 쓰여진다는 것은 이미 설명한 바 있다. 교회의 부는 교육 사업에도 크게 쓰여지고 있다. 교회는 교육투자를 강화하여 많은 미국 대학들이 재정난에 허덕이는 것에 비하여 교회 소유 브리감 영 대학교는 계속 성장하여 미국내 최대의 사립대학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입학 희망자가 폭발하여 분교 설치나 새로운 대학의 설립이 시급한 상황에 이르고 있다. 또한 교회는 미국 최대의 초급대학인 릭스 대학(Ricks College)을 운영하고 있다.
교회가 직접 브리감 영 대학에 재정지원을 하고 있으나 신자들도 개인적으로 이 대학에 많은 기부를 하고 있다 1980년대에 이 대학은 수억달러 상당의 기부를 받았다. 매리어트 그룹의 윌러드 매리어트(J. Willard Marriot) 회장은 2천만 달러 상당의 자기주식을 이 대학에 기증하여 대규모의 확장이 가능하도록 하였다. 거의 매년 이 대학에는 큰 규모로 부동산이 기증되고 있다. 1970년대에 캘리포니아의 어떤 부부는 바다가 내려다 보는 요지에 있는 1백20만평의 땅을 기증하였다. 대학은 이 땅을 건설회사와 합작으로 주거.상업.공업의 복합단지로 개발하였다. 이 대학은 엄청나게 많이 기증된 부동산을 라스 베가스, 텍사스주의 포트워스, 아리조나주이 피닉스, 캘리포니아의 맬리부 비치(Malibu Beach)등에갖고 있다. 기부의 75%는 부동산이므로 학교발전을 위한 현금을 확보하기 위하여 1981년 9월에 대학당국은 5개년 계획으로 1억 달러를 모금하기 시작하였다. 모금의 목표는 1980년대에 질적으로 우수한 대학을 만든다는 것이었는데 계획보다 모금은 훨씬 빨랐고 목표년도까지 1천만 달러 이상의 기부금이 초과 달성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모금은 재수가 좋거나 바라고 있기만 해서 된 것은 아니었다. 대학의 모금 운동은 미국의 주요 대학이 행한 모금 운동 중에는 가장 철저하게 조직된 것이었다. 최고 명문대학과 안정된 고등 교육기관들 까지도 계속 줄어드는 기부금을 서로 차지하려 다투고 늘어나는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졸업생들에게 계속 기부하도록 설득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임에 비추어 브리감 영 대학은 재정적인 풍요를 누리는 편이다. 대학이 필요로 하는 기금조달을 담당한 것은 후기성도 재단(Latter Day Saints Foundation)이다. 이 재단은 1966년에 대학개발처(Office of University Development)라는 이름으로 처음 설립되었는데 초대 총재는 일리노이주 최대 은행 그룹인 컨티넨탈 일리노이 은행신탁회사(Continental Illinois National Bank and Trust Company)회장으로 독실한 몰몬신자인 데이비드 케네디(David M. Kennedy)가 맡았다.
그는 1969년 그 직을 사임하고 닉슨 행정부의 재무장관에 취임하였는데 케네디의 뒤를 이은 총재직은 기업가나 은행가, 전임시장 등 경영에 뛰어난 사람들이 맡았다. 이 재단의 전문가들은 기부금을 낼 수 있는 사람에 관한 자료와 정보를 변호사, 공인회계사, 은행가들로부터 체계적으로 입수하고 매우 설득력 있는 방법으로 사업의 목표, 내용 그리고 사업성과를 설명한다. 이들의 활동은 대성공을 거두고 있는데 모금액의 3분의 2가 몰몬신자가 아닌 사람들에게서 나오고 있다.
5. 복음전파 위해 세계 최고 수준의 대중매체 육성
후기성도는 20세기 후반에 들어와 경제적인 힘을 가진 집단이 되었다. 교회는 신문, 라디오, 텔레비전, 출판 및 통신위성 등 대중매체 사업의 주인으로서도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러나 대중매체 사업에 대한 교회의 영향력은 주로 외설이나 도덕적 타락을 방지하면서 기독교적 윤리관과 가치를 고양시키는 일에만 발휘되고 있다. 현대적인 대중매체사업에 대한 투자를 보면 전세계의 어떠한 종교 기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규모의 투자를 하고 있는데 이 대중매체는 그리스도가 오는 것을 준비하기 위해 몰몬이 가장 심혈을 기울여서 육성하는 분야다.
지금까지 교회는 온 세계에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기본적으로 선교사의 전도와 몰몬경을 나누어 주는 방법을 써왔다. 그러나 20세기 후반에 들어와서는 라디오, 텔레비전, 위성통신에지속적으로 투자하는 독특한 복음전도 방법을 활용하여 대성공을 거두고 있다. 실제로 교회가 소유하고 있는 대중매체는 북미의 모든 사람들에게 미칠 수 있으며 북미의 경계를 지나 전세계 모든 사람들에게 닿게 될 날이 멀지 않다고 그들은 믿고 있다. 존 헤이너만(John Heinerman)과 앤슨 슈프(Anson Shupe)는 1983년에 몰몬교회가 소유하고 있는 모든 대중매체 기업을 조사한 바 있는데 총주식가액을 최소한 5억4천7백만 달러로 평가하면서 말일성도 예수 그리스도 교회는 세계 최대의 대중매체 보유 종교기관임을 밝힌 바 있다. 후기성도들은 1830년에 교회를 세운 후 신문, 잡지 및 정기간행물 발간에 각별한 노력을 기울였으며 가는 곳마다 신문사와 출판사를 세웠다. 이것은 교회 회원들간에 소식을 전하고 교회의 가르침대로 회원들을 이끌며 자신들의 종교문화를 창조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것이었다. 이들이 유타주에 정착해서 세운 신문사인 데저렛 뉴스(Deseret News)는 1850년에 설립되었는데 미시시피강 서쪽의 서부지역에서는 최초로 세워진 신문사였다.
데저렛 뉴스 외에 교회는 여러 개의 출판사를 갖고 있는데 가장 큰 것이 데저렛 출판사(Deseret Book Company)다. 이 출판사는 1866년부터 수많은 교회 및 종교관련 서적을 출판해 왔는데 록키 산맥지역에서는 가장 큰 종교서적 출판사로서 서부지역에 12개의 초대형 서점을 운영하고 있고, 미국 전역에 많은 작은 서점을 소유하고 있어 1983년 당시 연 매출액이 3천만 달러를 넘었다. 교회는 다른 신문사에 대한 주식보유를 계속 확대하고 있다. 1965년 교회는 언론계의 유명한 지주회사인 타임스 미러사(Times-Mirror Corporation)의 주식 30만주를 사들여 이 회사 주식의 5.5%를 보유하게 됨으로써 이 회사의 두번째 대주주가 되었다.
타임스 미러사는 로스앤젤레스 타임스(Los Angeles Times), 달라스 타임스 헤랄드(Dallas Times Herald), 덴버 포스트(Denver Post) 등을비롯한 아홉개 주요 도시의 큰 신문사와 세인트 루이스, 뉴욕주의 엘마이라와 시라큐스, 펜실베니아주의 해리스비그, 텍사스주의 오스틴과 달라스 등지에 일곱개의 텔레비전 방송국을 소유하고 있는 영향력 있는 언론관련 주주회사다. 교회는 달라스 타임스 헤랄드, 덴버 포스트,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등의 주식 일부를 소유하고 있다. 1970년대부터 언론인들과 종교학자들은 종교와 전자매체의 제휴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었는데 유명한 부흥목사인 로버트 슐러(Robert Schuller), 제리 폴웰(Jerry Falwell), 오럴 로버츠(Oral Roberts), 지미 스와거트(Jimmy Swaggart)와 같은 개신교 성직자들은 라디오와 텔레비전 그리고 인공위성과 같은 첨단기술을 잘 활용하여 자기들의 믿음과 이상과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파하고 있다.
이 전자매체 분야에는 몰몬도 눈부시게 진출하고 있다. 실제로 다른 경쟁자들과는 거의 상대가 안될 정도로 이들은 전자매체를 잘 활용하고 있다. 전자매체의 무한한 잠재력을 높게 평가하고 있는 후기성도들은 천년왕국을 준비하는 일관된 목표를 가지고 최신 개발된 전자매체를 복음전파에 계속 응용하고 있다. 몰몬은 일찍부터 전자통신에 뛰어들었다. 1861년 대륙을 가로지르는 첫번째 전신선이 완성되자 후기성도들은 독자적인 전신망을 건설하기 시작하였다. 1880년까지 유타주에만 1천8백km의 전신선을 깔고 68개의 전신국을 설치하여 지역의 교회로부터 십일조와 자원봉사와 원자재 수송을 위한 연락을 취하는 국가 최초의 지역전신망을 완성하였다.
1922년 세계 최초로 펜실베니아주 피츠버그에서 라디오 방송이 시작된 1년 후 데저렛 뉴스의 판매 책임자였던 멜빈 밸러드(Melvin R. Ballard)는 신문사 지붕 위에 라디오 송신소를 세우고 교회의 라디오 방송을 시작 하였다. 1929년에 이 방송국(KSL)은 전국적인 라디오 방송국인 NBC와 업무를 제휴하였으나 나중에는 CBS와 업무 제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몰몬 태버나클 합창단이 출연하는 '음악과 짧은 말씀(Music & Spoken Word)'프로그램은 이 방송국에서 처음 시작하여 CBS에 실려 전국적으로 방송하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이 교회가 제공하는 프로그램은 교회를 드러내지 않고 시청자들의 호감을 살 수 있도록 평범하면서도 품위와 호소력을 갖춘 내용으로 편성하고 있다. 교회는 보통의 종교기관들이 흔히 쓰듯이 다른 종교를 공격하거나 자기 교회와 교리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직접적인 선전방법은 쓰지 않는다.
오늘날 교회의 방송사업을 총괄하는 지주회사는1962년에 설립된 보너빌 인터내셔널(Bonneville International)인데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미국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대중매체 기업이다. 보너빌 인터내셔널은 아홉개의 방송회사를 거느리고 있으며 두개의 대규모 상업 텔레비전 방송국과 열두개의 라디오 방송국을 갖고 있다. 또한 헐리우드에 영화제작회사를 갖고 있으며 워싱턴 뉴스국과 유선방송국 및 위성방송국 그리고 라디오 데이터시스템을 소유하고 있다.
교회는 실제로 세개의 텔레비전 방송국을 갖고 있는데 두개는 상업방송이며 나머지 한 개는 브리감 영 대학에서 운영하는 교육방송(KBYU-TV)이다. 두개의 상업방송 중 CBS텔레비전 방송망과 연결된 상업방송국인 KSL-TV는 미국의 모든 텔레비전 방송국 중 가장 넓은 지역과 가장 많은 사람들에게 프로그램을 내보내고 있다. 이 방송국은 서부 전역에 흩어져 있는 1백21개의 중계방송국을 갖고 있다. 두번째 상업방송국인 워싱턴주 시애틀의 KIRO-TV도 전국 평균으로 보면 많은 시청자를 확보하고 있는 대규모 방송국의 하나이다.
그러나 연방통신위원회의 규정은 전파는 공공의 것이므로 방송편성에 신학적 내용을 혼합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따라서 이러한 방송국들은 공익광고를 통하여 간접적으로 교회의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표현할 수는 있으나 전도의 목적으로 직접적으로 이용되고 있지는 않다. 대신 매일 수백만명의 사람들이 매우 유익한 교회의 공익광고를 라디오와 텔레비전에서 시청한다. 대부분의 공익광고는 가정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홈 프론트 시리즈(Home-front Series)'로 구성된다. 이 시리즈는 주로 부모로 하여금 자녀와 배우자에게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도록 촉구한다든지 다른 사람의 감정과 느낌을 항상 존중하도록 가르치는 내용과 같은 것들이다 이 공익광고는 짤막하면서도 구성이 잘 되어 있고 전문가의 손으로 제작되었으며 끝머리에 후원자인 교회의 이름이 잠깐 비쳐지는 정도의 것이다.
1991년의 홈 프론트 시리즈에서는 마약과 습관성 의약품에 관한 공익 광고를 실시한 바 있으나 최근 1992년에 들어와서는 지구 환경보존에 역점을 둔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는데 '지구의 미래'와 '컴퓨터의 교훈'이라는 두 가지 텔레비전 공익광고와 '환경'을 주제로 한 여섯가지 30초짜리 및 60초짜리 라디오 공익광고가 방송되고 있다. 이 공익광고는 환경보호를 위해 노력과 관심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보너빌 인터내셔널은 현재 시애틀, 뉴욕, 캔사스 시티, 로스앤젤레스, 시카고, 달라스, 샌프란시스코 등 열 두개 대도시에 라디오 방송국을 갖고 있다.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과 연결이 되도록 교회는 정력적으로 이들 대중매체를 확대하여 왔는데 1962년 보너빌 인터내셔널이 창립 된 후 일곱 개의 라디오 방송국을 매입하였다. 이들 방송국은 모두 미국에서는 가장 큰 시장을 가진 대도시에 위치하고 있다. 예를 들면 교회는 1980년에 달라스 지역에 두개의 라디오 방송국을 확보했는데 이 방송국은 달라스, 포트워스 및 열 두개의 주변도시를 포함하는 광역 도시권에 있는 4백만 명의 사람들에게 방송을 내보내고 있다.
존 헤이너만과 앤슨 슈프가 조사한 대중매체 기업에는 교회가 소유한 것만 포함되어 있을 뿐 교회 신자들이 개별적으로 소유한 것은 제외되어 있다. 신자들이 가진 대중매체 기업도 많은데 교회는 신자들이 대중매체 산업에 진출하는 것을 장려하고 있다. 신자들이 가진 대표적인 대중매체에는 매리어트집안이 소유한 퍼스트 미디어(First Media)사가 운영하고 있는 광역 대도시권의 라디오 방송국 열 개와 자이언스 내셔널 퍼스트 은행(Zion's National Bank)의 로이 시몬스(Roy W. Simmons) 사장이 소유한 라디오 방송국 두개를 들 수 있다.
매리어트 집안은 1980년대에 교회의 성전이 세워졌으나 방송국이 없는 일곱개 도시의 라디오 방송국을 매입하였다. 교회 회원이 소유하고 있는 여러 방송국은 교회의 전자매체와 깊은 협력관계를 가지면서 운영되고 있다. 지금까지의 여러가지 사항을 종합하면 교회는 복음전파를 위하여 10개의 텔레비전 방송국과 24개의 라디오 방송국 그리고 주요한 유선텔레비전 방송국에 상당한 투자를 하고 있거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이다. 미국의 대중매체는 유럽이나 일본에 비해 훨씬 건전하고 윤리적인 내용을 전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교회가 대중매체산업에서 큰 비중을 갖게 되고 대중매체를 통한 영향력을 발휘하게 된 것은 연방통신위원회나 법무성과 같은 영향력 있는 정부기구 안에 존경 받는 말일성도들이 중요한 자리를 많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1980년대에 6인으로 구성된 연방통신위원회에는 위원장과 위원 한사람이 말일성도였다. 위원장 로젤 하이드(Rosel H. Hyde)는 23년간 그 직책에서 봉사하였으며 정직하고 양심적인 업무수행으로 널리 알려진 사람이다. 몰몬의 영향력은 공익방송에도 크게 미친다. 미국 전역에 시청자를 갖고 있는 공익 텔레비전 방송망인 PBS(Public Broadcasting Service)의 회장직은 전 브리감 영 대학교 총장인 댈린 오우크스(Dallin Oaks)가 맡고 있었으나 교회의 사도로 부름 받은 후에 그는 회장직을 사임하였다.
전국 공익텔레비전 방송협회(National Association of Public Television Stations)의 회장도 역시 헌신적인 몰몬으로서 과거에는 브리감 영 대학교가 소유한 교육방송인 KBYU-TV의 방송국장을 맡았던 인물이다. 레이건 대통령은 보너빌 인터내셔널의 사장을 지낸 아치 매드슨(Arch L. Madsen)을 국영 라디오 자유 유럽(Radio Free Europe)과 라디오 리버티(Radio Liberty)의 이사장으로 임명하였으며 1983년 5월에는 상원의 인준을 받아 그를 국제 방송(International Broadcasting)의 이사장으로 임명하였다. 1981년 레이건 대통령은 수억에 달하는 소련과 동구권을 상대로 하는 선전 방송국인 미국의 소리 방송(Voice of America) 사장에 독실한 몰몬신자이며 교회소유 영화회사 보너빌 엔터네인먼트(Bonneville Entertainment)의 사장을 지낸 제임스 콩클링(James Conkling)을 임명하였다. 최근 교회가 행하는 인상 깊은 투자는 최신 위성통신기술의 도입이다. 1981년 처음으로 교회는 5백개의 위성 수신용 안테나를 각 교회에 설치하여 인공위성을 활용하는 대규모 텔레비전망을 구성하였다. 이후 보너빌 인터내셔널은 투자를 확대하여 캐나다와 멕시코에 이르는 민간으로서는 세계 최대의 위성 비디오망을 보유하게 되었으며 북미 지역에서는 모든 유선 텔레비전망과 연결이 가능하게 되었다.
위성통신기술을 활용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극적인 예는 1980년 4월교회창립 1백50주년을기념하는 대회에서 드러났다. 1830년 4월 성도 여섯명이 모여 교회를 처음으로 시작하였던 뉴욕주 훼이에트에 있는 복원된 휘트머의 통나무 집에서 행한 스펜서 킴볼 회장의 설교광경은 솔트 레이크 시티에서 열린 연차대회와 동시에 웨스타 1호(Westar I)위성을 통하여 미국 전역에 있는 교회와 성도들의 가정에 생방송으로 방영되었다.
교회는 위성통신 시스템을 앞으로 젊은이를 위한 훈련과 함께 선교사업에도 대대적으로 활용할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교회는 장차 중남미, 유럽, 아시아의 모든 교회를 연결하는 텔레비전망을 구성하기 위하여 자체 보유의 통신위성을 발사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교회 지도자들은 그 때가 되면 한시간 내에 전세계에 있는 교회와 성도들에게 소식과 말씀을 전달할 수 있게 될 것으로 믿고 있다. 그러면 왜 교회는 이와 같이 광범위한 위성통신망을 갖추려고 애를 쓰는가? 교회의 지도자들은 통신위성을 활용하고 우주시대의 설비를 쓰는 것이야말로 회복된 복음의 메시지를, 믿는 자에게나 안 믿는 자에게 전하는 훨씬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회 대변인의 다음과 같은 이야기는 이와 같은 첨단 기술을 사용하려는 이들의 선교 열정을 반영하고도 남는다. " 좋은 말씀이 바깥으로 전해지는 방법은 정말로 놀랍기만 하다. 옛 선지자들은 지붕 위에서 외친다고 말했다. 그러나 오늘날은 그것을 훨씬 능가하여 산꼭대기로부터 울려 퍼진다고 할 수 있는데 앞으로는 우주로부터 울려 퍼진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교회는 시온을 넓히기 위한 효과적인 복음전파 방법을 계속해서 발전 시키고 있다.
6. 편견과 오해는 사라지고 있다.
1981년 8월, 당시 대통령이었던 로날드 레이건은, 유타주 출신 연방상원의원이며 법사위원장인 제이콥 가안(Jacob E. Garn)의 아들이 다른 몰몬 젊은이들과 마찬가지로 선교사로서 영국으로 출발하기 바로 며칠 전에 가안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 편지 속에 레이건은 다음과 같이 썼다. "나는 당신의 교회에 큰 존경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나는 몰몬은 아니지만 몰몬의 가치관에 대하여 깊은 경의를 표하고자 합니다." 레이건이 가안에게 보낸 편지는 20세기 후반에 미국의 대중이 몰몬에 대해서 갖고 있는 인식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이미지는 1983년 10월 전국적으로 실시된 갤럽의 여론조사에서도 확인된다. 여론조사에서는 몰몬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이 부정적인 반응을 압도하고 있다. 죠지 갤럽 2세는 조사결과를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는 미국의 성인 인구의 1%만을* 겨우 대표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보면 미국 사회에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음이 분명하다." 매주 일요일 아침 많은 경건한 미국사람들은 CBS 라디오와 텔레비전 방송에서 아름다운 성가와 더불어 인생의 길잡이가 되는 짤막한 말씀을 듣게 된다. * 10년 후인 지금은 미국 성인 인구의 1.7%를 넘는다. 이것은 '음악과 짧은 말씀(Music And Spoken Word)'이라는 프로그램인데 세계 최고수준의 성가합창단으로 불리는 몰몬 태버나클 합창단(Mormon Tabernacle Choir)의 영감적인 노래와 짧지만 감동적인 말씀으로 이루어진다. 1929년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60여년간 계속되어 미국 방송 역사상 가장 오래된 이 프로그램은 세계 로타리클럽 총재를 역임하고 교회 십이사도 중의 한 사람이었던 리차드 엘 에반스(Richard L. Evans) 박사가 시작하였는데 그는 세상을 떠나기까지 41년 동안 말씀을 담당하였다. 이 프로그램은 현재 한국의 AFKN을 포함한 전세계 8백개의 라디오와 텔레비전 방송국에서 중계하고 있다.
세계 도처에서 사람들은 음반으로, 테이프로, 라디오로, 텔레비전으로, 그리고 연주회에서 몰몬 태버나클 합창단의 노랫소리를 듣는다. 때때로 이 합창단은 세계를 무대로 연주여행을 떠나는데 교회를 알리는 외교관의 역할을 수행한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직후인 1991년 6월 이 합창단은 중부 유럽과 동부 유럽으로 연주 여행을 떠나 동독과 서독, 스위스, 오스트리아, 헝가리, 폴란드, 체모, 그리고 소련의 11개 도시를 아름다운 음악으로 휩쓸었다. 수만 명의 청중이 연주회에 참석하여 영감적인 목소리를 직접 들었을 뿐 아니라 각국마다 중계된 라디오와 텔레비전을 통하여 수억의 유럽인들이 합창단의 노래를 즐겼다. 이 합창단은 우리나라에서도 1980년에 국립극장에서 공연한 바 있으며 여러 차례에 걸쳐 녹화중계 되었다. 당시 이들의 노래를 직접 들어본 사람들은 웅장함 속의 조화와 마음을 울리는 영적 감동을 잊지 못할 것이다. 특히 우리말로 부른 애국가는 애국가가 불리거나 연주된 이래 가장 웅장하고 감동적인 것이 아니었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1851년에 시작된 이 합창단은 3백75명 정도의 단원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특색은 교회의 다른 모든 활동에서와 마찬가지로 단원 모두가 무보수로 일하는 자원봉사자들 이라는 점이다. 보수를 주는 상업적인 합창단이었다면 이와 같이 오랫동안 합창단을 유지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 합창단은 만국 박람회와 같은 세계적인 규모의 행사나 대통령 취임식에서도 노래하도록 초청을 받는다. 음악과 짧은 말씀 프로의 60주년 기념식에서 죠지 부시 대통령은 이 합창단을 '미국의 최고 보물 중의 하나'라고 격찬하였다. 몰몬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건이 있었다. 은퇴한 치과의사로서 인공 심장 수술을 받고 1백12일을 살았던 바아니 클라크(Barney Clark)박사와 그에게 심장수술을 했던 윌리암 드브리즈(William C. DeVries)박사는 모두 말일성도인데 교회는 이 두 사람에게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1백명 이상의 국회의원이 정부가 민간인에게 수여하는 최고 명예인 자유 훈장(Medal of Freedom)을 죽은 클라크 박사에게 추서 하도록 촉구하였다. 시애틀에서 거행된 클라크 박사의 장례식에는 레이건 대통령이 보낸 특사와 연방정부 관리들과 많은 교회의 지도자들이 참석하였다.
세상 사람들은 이제는 대부분이 몰몬을 잘 안다. 솔트 레이크 시티 중앙에 있는 솔트 레이크 성전과 주위 명소에는 매년 4백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아오는데 이것이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이나 워싱턴의 워싱턴 몰을 찾는 사람에 필적하는 숫자다. 또한 동부에서 서부를 가거나 서부에서 동부를 가는 대통령이나 대통령 후보들은 모두 솔트 레이크 시티를 들러 교회 지도자들을 만난다. 웨스턴 항공사와 팬 아메리칸 항공사를 흡수하여 세계 최대의 항공사가 된 델타는 서부 기지를 솔트 레이크 시티로 옮겨 관광객과 정치인들의 나들이를 한층 쉽게 해주고 있다. 세계적인 체인망을 갖고 있는 매리어트 호텔(Marriot Hotel)에 투숙하는 여행객들은 방마다 기드온 성경과 나란히 '예수 그리스도의 또 하나의 성약"이라고 부제가 붙어 있는 물몬경을 볼 수 있다. 1992년 1월 미국의 권위있는 맥밀란 출판사(Macmillan Publishing Company)는 몰몬의 역사와 교리와 교회운영과 생활태도 등을 조합적으로 정리하여 몰몬 백과사전(Enyclopedia of Mormonism)을 출간하였다. 맥밀란은 특히 전문 백과사전과 인문과학, 사회과학, 역사 및 종교분야에 권위가 있는 출판사인데 1987년에 16권으로 된 종교사전을 발간한데 이어 5권으로 된 몰몬 백과사전을 출판한 것이다.
이 백과사전은 전체 1천2백개의 광범위한 주제에 대하여 7백35명의 학자들이 집필하였다. 이 책은 몰몬에 대해 의심을 가진 사람, 관심을 가진 사람이,. 최근 개종자거나, 오래된 신자거나 누구라도 쉽게 내용을 찾을 수 있도록 꾸며져 있으며 공공도서관이나 대학 도서관 또는 중고등학교 도서관에 영구 비치할 수 있도록 준비된 것이다. 유명 출판사가 기획하여 만든 몰몬 백과사전의 출현은 몰몬에 대한 편견과 오해와 왜곡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예가 된다.
1992년 3월 교회의 지도자 한 사람은 유럽을 방문하던 길에 로마 교황청의 바티칸 도서관(Vatican Library)에 들러 도서관장인 레오나르드 보일레(Leonard Boyle)신부에게 몰몬 백과사전 한 질을 기증하였다. 보일레 신부는 그 책을 감사하게 받아 들이며 도서관의 귀중한 장서로 보관하겠다고 약속하였다 그 는 방문자들을 도서관 경내로 안내하여 기원 818년경부터 씌어진 양가죽으로 된 희귀한 성경 원본들을 보여주고 자기가 손수 집필한 안내서인 [바티칸 라이브러리]를 선물로 증정하였다. 몰몬 이미지의 변화는 미국 영화산업의 예를 보면 가장 뚜렷하게 드러난다. 영화야말로 시대 흐름과 여론을 나타내 주는 가장 좋은 척도가 되는 것이다. 영화와 몰몬과의 관계도 물론 적대적인 것으로부터 우호적인 것으로 바뀌었다. 초기 영화에서 보는 몰몬은 19세기의 반(反)몰몬적 분위기를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었다. 대중매체를 연구하는 학자인 리차드 넬슨(Richard A. Nelson)은 "초기 헐리우드 영화는 주로 몰몬 개척자 생활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나 일부다처의 해악에 대한 공격을 많이 하고 있다 대부분의 초기 무성 영화제작자들은 적극적인 반(反)몰몬이라 할 수는 없어도 몰몬의 역사나 교회를 잘 모르는 데다가 유타에 관한 현실적인 정보도 미흡하여 센세이셔널하게 비판하는 쪽으로 영화를 만들어 나갔다."고 초기 영화 시대의 분위기를 전하고 있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와 헐리우드와 솔트 레이크 시티가 화해하는 날이 왔다. 1921년 미국 상원에는 매 영화마다 30%의 영화산업세(Film Industry Tax)를 부과하는 법안이 제출되어 있었는데 이것이 통과되면 영화의 수익성은 결정적으로 타격을 입는 상황이었다.
제작자인 윌리암 폭스(William Fox)는 당시 몰몬신자로서 유명한 정치인이었던 리드 스무트(Reed Smoot)에게 영화산업세를 부결시키도록 부탁하면서 자기가 이미 제작해 놓은 몰몬에 비판적인 영화 두편을 상영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결과적으로 법안은 부결되었고 영화도 상영되지 않았다. 이 때부터 헐리우드에서는 반(反)몰몬적인 영화는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리차드 넬슨은, "몰몬들이 여인들의 혼을 뺏어 가려고 수작을 부린다는 어처구니 없는 주장은 사라졌다. 유타에 사악한 종교왕국을 세우려 한다는 왜곡된 부정적 이미지도 서부시대의 다른 유물과 더불어 사라졌다. 이제는 영화제작들은 유타와 그 주민에 대한 욕설로는 큰 돈 벌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썼다. 1940년대에 들어서서 헐리우드는 몰몬에 대하여 영웅적인 면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몰몬 작가인 바르디스 휘셔(Vardis Fisher)가 1939년 [하나님의 자녀들(Children of God)이라는 소설을 써서 하퍼북 대상(Harper Book Prize)을 받게 되자 1년 뒤 20세기 폭스사는 영화제작자 대릴 자낙(Darryl F. Zanuck)과 더불어 휘셔의 소설을 영화화하였는데 이것이 서사시적 대작 영화인 '브리감 영'이다.
이 영화는 오스카상을 받은 딘 재거(Dean Jagger)와 타이론 파워(Tyron Power) 등이 출연하여 공전의 히트를 하였다. 이 영화에서는 몰몬이 예의 바르고 박해받는 개척자들로 그려졌다. 그들의 신앙에 대해 편견 투성이인 동부지역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신앙을 키우면서, 불굴의 의지로 거칠고 험한 서부 사막지대를 문명사회로 바꾸어 나가는 실천과정을 이 영화는 그리고 있다. 이로써 몰몬에 대해 지금까지 와는 완전히 다른 동정적인 분위기를 미국 사회 내에 불러 일으키게 되었다.
전국적으로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의 여론은 몰몬을 높이 평가하는 분위기로 바뀌었으며 몰몬에 대한 박해를 존 스타인백의 소설 [분노의 포도]에 나오는 오클라호마 사람들에 대한 박해와 비교하게 되었다. 영화개봉에 앞서 여러 도시에서 계속된 시사회에는 출연 배우들이 직접 모습을 나타냈으며 실로 이 영화는 헐리우드가 교회를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우리나라에서는 상연된 적이 없고 편견을 가진 다른 기독교인들의 압력으로 앞으로 오랜 세월동안 상영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영화 '브리감 영'은 미국의 많은 사람들이 그동안 몰몬에 대해 막연하게 갖고 있던 좋지 않은 감정이나 악의를 씻어 버리고 좋은 이미지를 갖게 만들었다. 몰몬은 '아메리카의 개척자 정신'을 대표하는 사람들로 새로이 인식되었고 분파적인 이단의 무리라는 오명을 완전히 벗고 미국사회의 본류에 당당히 들어가게 되었다. 주연배우인 딘 재거는 30년 후에 몰몬으로 개종하였으며 열렬한 교회의 대변인이 되었다. 흥행에 성공한 영화 '브리감 영'은 그 후에도 두차례나 더 영화화되어 상영되었다. 이후 헐리우드는 몰몬에 대하여 초기화 같은 적대적인 태도로 돌아간 일이 한번도 없었다. 텔레비전에서도 몰몬은 일반적으로 정직하고 확고하게 선한 의지를 가진 사람들로 비추어지고 있다. 교회는 그 후에 브리감 영 대학내에 영화 스튜디오를 세우고, 내용이 좋은 종교 영화나 교육 영화를 직접 만들기 시작하였는데 나중에 미디어 마케팅(Media Marketing)이라는 독립적인 영화제작사를 설립하였다. 이 영화사의 설립자는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에서 일하던 웨젤 위터커(Wetzel O. Whitaker)였는데 상업적으로 성공한 많은 영화들을 만들었다.
1960년에 설립된 이 영화사는 2만5천편이 훨씬 넘는 단편 내지는 중편의 교육 영화를 만들었다. 회사 관계자에 의하면 이 회사의 최대 고객은 가톨릭, 감리교, 여러 침례교단, 루터교, 안식교와 같은 다른 기독교회들이라고 한다. 오늘날 미국사회에서는 몰몬에 대한 편견이나 오해 또는 왜곡은 거의 사라졌다. 배타적이고 극단적인 기독교 근본주의자들(Fundamentalists)이나 몰몬에 대해 무지하여 근본주의자들이 만들어 낸 편견과 오해와 왜곡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들 외에는 그들을 비판하거나 이단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없다. 1830년 교회가 세워진 후 몰몬을 이단으로 몰아세운 것은 주로 침례교회의 근본주의자들이었다. 그들은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소책자와 팸플릿을 통하여 죠셉 스미스이 시혐을 비난하고, 몰몬이 기독교인이 아니라고 공격하고 편견과 오해와 왜곡을 만들어 냈다 그러나 상황은 크게 바뀌고 있다. 이제는 많은 사회적인 이슈에서 몰몬과 침례교는 같은 견해를 갖고 있다. 역사적으로 전혀 다른 신학체계를 갖고 있는 노골적인 적대감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두 교회는 포르노, 낙태, 동성연애, 이혼, 마약, 알코올중독 등에 대하여 똑 같은 반대의견을 갖고 있으며 세속화된 인간중심주의, 남녀평등입법, 무신론적인 공산주의 등을 함께 반대한다. 더 나아가서 두 교회는 이런 반대운동에서 결속 내지는 연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두드러진 사례 중의 하나는 침례교회의 유명한 제리 폴웰(Jarry Falwell)목사가 이끄는 모랄 머조리티사(Moral Majority Inc.)와 몰몬학자인 클리언 스카우슨(W. Cleon skousen)이 이끄는 프리멘 연구소(Freemen Institute, 1984년 9월 이 연구소는 헌법연구센터, National Center for Constitutional studies로 이름을 바꾸었다)의 좋은 협력관계를 들 수 있다. 프리멘 연구소 부소장의 말을 들어 보기로 하자. "제리 폴웰 목사와 우리 연구소 소장인 스카우슨 박사는 개인적으로 가까운 친구간이다. 스카우슨 박사는 1980년 7월 4일의 대규모 합동모임에서 강연하도록 폴웰 목사를 초청하였다. 폴웰 목사는 우리가 만든 자료를 많이 활용한다. 우리는 매달 그에게 자료를 보낸다. 그는 특히 '미국의 기적'이라고 이름붙인 기본과정을 좋아하는데 이 과정은 앵글로 색슨 시대부터 현재까지 우리헌법의 역사를 13시간짜리 테이프로 기록한 것이다. 폴웰 목사는 스카우슨 박사가 쓴 것이면 어느 것이나 좋아한다." 모랄 머조리티사의 사무국장인 칼 토마스(Cal Thomas)도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하였다. "1981년 나는 솔트 레이크 시티로 가서 스카우슨박사와 함께 식사를 나누었다. 우리는 공통적인 생각을 갖고 여러 가지 일을 함께 의논하면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우리는 프리멘 연구소의 자료를 많이 검토하였는데 스카우슨 박사는 가치있는 자료를 많이 주었다. 나는 스카우슨 박사가 설명하는 사회복지제도(Social Security System)에 특별한 흥미가 있었다. 폴웰 목사님도 역시 그것을 좋아한다. 돌아온 후 나중에 더 많은 자료를 받았다. 앞으로 우리 양측은 공통으로 믿는 원칙들을 지키기 위해서 함께 힘을 모아야 할 날이 올 것으로 본다. 필요한 상황이 되면 이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매우 높다." '폴웰, 프리멘에 매혹되다'라는 제목의 UPI 기자와의 회견 기사에서 폴웰 목사는 프리멘 연구소를 '이 나라의 지도적인 보수그룹'이라고 칭찬하고 브루킹스 연구소가 진보적 그룹을 대표한다면 프리멘 연구소는 보수적 그룹을 대표한다고 말했다. 폴웰 목사는 다음과 같이 계속했다. "이 나라의 모든 보수적 그룹은 헌법 문제에 관하여 최고 수준의 연구를 하고 있는 프리멘 연구소의 연구결과에 크게 의존한다. 나는 그들이 하는 일에 최상의 존경심을 갖고 있고 그들이 주장하는 모든 것에 동의하고 있다." 그 후에도 폴웰 목사는 솔트 레이크 시티에 있는 사람들에게 여러 차례 이야기 하였는데 그 때마다 프리멘 연구소의 연구업적을 추켜 세우면서, " 우리는 스카우슨 박사가 말하는 대로 해야 한다. 그는 건국의 선조들이 정한 좋은 원칙을 가르치고 있다"고 하였다. 1980년 현법제정기념일에 가진 기자회견에서 스카우슨 박사와 같이 찍은 폴웰 목사의 사진은 프리멘 연구소의 팸플릿에 인상적으로 실려 있다.
전통적으로 몰몬과 침례교가 불쾌한 관계를 유지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남침례교는 1998년도 총회를 몰몬의 안마당인 솔트 레이크 시티에서 개최하려고 계획을 세우고 있다. 한편 미국의 장로교회는 1990년도 전국총회를 5월 29일에서 6월 7일 사이에 솔트 레이크 시티에서 개최한 바 있다. 이때 전국적으로 2천5백명의 대표들이 참석하였으며 이때 몰몬교회의 대관장단은 환영의 뜻을 표시하였고 유명한 몰몬 태버나클 합창단은 정기연주회에 장로교 지도자들을 초청하였다. 유럽에서도 과거에는 몰몬을 이단적으로 보는 견해가 강했다. 이는 대중매체의 주목을 받을 기회가 별로 없었던 것과도 관계가 있다. 그런데 1980년대에 미국은 스칸디나비아 4개국 중 3개국의 대사에 독실한 몰몬신자를 임명하였다. 이 사람들은 각각 그 나라에서 선교사로 봉사한 일이 있고 그 나라말을 유창하게 잘 할 뿐만 아니라 유럽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진 사람들이었다. 과거에는 신문에 몇 줄 정도 밖에 나지않던 몰몬에 관한 기사가 한 페이지까지 실리게 되었고 교회에 관한 이미지는 매우 좋아지게 되었다. 인구가 줄어들고 종교활동이 매우 부진한 이들 나라에서 몰몬신자는 계속 늘고 있다.
교회가 세계적으로 가장 빠른 성장을 계속하고 그에 따른 풍성한 열매를 맺으면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으로 강한 영향력을 갖게 되자 사람들 중에는 몰몬에 대한 편견과 오해와 왜곡을 증폭시키는 책을 쓰고 영화를 만들어 일반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수익을 올리려는 우스운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에드먼드 덱커라는 사람이 [하나님을 만드는 자들(The God Makers)]이라는 오류와 왜곡으로 가득찬 책을 쓰자 반(反)몰몬들은 이를 영화화하여 보통의 반(反)몰몬 선전보다 훨씬 큰 반응과 수입을 얻었다. 그들은 이 영화에 '몰몬 교회가 실제로 무엇을 믿는가를 보여 주는 깜짝놀랄 만한 폭로'라는 부제를 달았다.
그러나 실제로 가장 놀랐던 사람들은 바로 후기성도들이었다. 왜냐하면 그 영화를 본 후기성도들은 어떻게 그런 정도까지 왜곡되게 자기들을 소개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 때문이었다. 몰몬들이 반론을 제기하기도 전에 그 영화가 너무 심하다고 생각한 미국의 양심적인 '전국 기독교 유태교 총회(National Conference of Christians and Jews)'에서는 그 영화를 면밀히 검토하고 실제로 후기성도들이 믿는 것과 비교한 후에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우리의 견해로는 이 영화가 몰몬 교회와, 그들의 역사와 그들의 믿음을 공정하게 표현하고 있지 못하다. 이 영화는 반쯤 사실인 것을 전부가 사실인 것처럼 다루고 있고 잘못된 일반화를 하였고 틀린 해석으로 인기 끌기에 급급하고 있다. 이 영화는 몰몬신앙의 진면목을 반영하고 있지 않다." 1844년 6월 27일 조셉 스미스가 폭도들의 습격으로 살해되었을 때(후기성도들은 이 사실을 순교하고 부른다) 당시 일리노이 주지사인 토마스 포드(Thomas Ford)는 이 비극적 사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악의에 찬 기록을 남겼다. "현대의 가장 성공적인 사기꾼이었던 조셉 스미스는 이렇게 쓰러졌다. 그는 무식하고 수준 낮은 사람이었지만 일시적인 성공을 거둘 수 있는 자연스러운 면면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성품이 부정하고 사악하여 그는 빛을 잃고 좌절을 겪었고 결국 장래에 크게 성공할 만한 조직을 만드는 데는 완전히 실패했다" 그런 평가를 내렸던 토마스 포드는 그 후 어떻게 되었던가? 그는 6년 후에 죽었는데 죽을 때는 거의 파산 상태에 빠져 1백58달러의 부동산과 다른 사람 손에 다섯명의 아이들을 남기고 죽었다. 그보다 3개월 먼저 죽은 아내는 나라가 주는 비용으로 땅에 묻혔다. 토마스 포드는 아무도 조셉 스미스의 죽음과 연관된 것 이외에는 기억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교회는 조셉 스미스가 죽은 카테이지 감옥터(Carthage Jail)를 사서 옛날대로 완전히 복원한 후 성역화 하여 그가 죽은 지 1백55년이 지난 1989년 6월 27일 그 헌납식을 가졌다. 헌납식에는 4천명의 사람들이 참석하였는데 그들은 모두 일어나서 '말일에 예언자 주신 하나님'이라는 찬송가를 부르면서 조셉 스미스의 선지자로서의 업적을 기렸다. 이 헌납식에는 교회의 회장인 에즈라 태프트 벤슨과 제일회장단 보좌인 고든 비 힝클리가 참석하였는데 특히 일리노이 주지사인 제임스 톰슨(James Thompson)의 부인 제인 톰슨이 참석하였고 일리노이주 상원의원인 로라 켄트 도나휴(Laura Kent Donahue), 번 해그스트롬(Verne Hagstrom), 그리고 퀸시(Quincy)시의 시장과 왈소(Warsaw)시의 시장, 전 재무장관 케네디 등이 참석하였다.
이 지역에 살고 있는 성도들은 웨스턴 일리노이 대학 음악과 교수인 모간 맥머디(Maughan McMurdie)의 지휘로 대규모 합창단을 조직하여 아름다운 음악을 준비하였다.
고든 비 힝클리 제일회장단 회장은 헌납기도 가운데 그 장소가 모든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와서 죽은 사람의 생애와 업적을 생각하면서 명상하고 기도할 수 있는 장소가 되도록 축복하였다. 그는 "오늘 여기에 톰슨 여사가 온 것은 말로 하는 것 이상의 뜻이 있습니다. 지금은 새로운 시대이며 놀라운 때입니다."라고 말했다.
축사를 맡은 톰슨여사는 주의회 일로 남편인 톰슨 지사가 그 자리에 참석치 못하였음을 사과하고 앞으로 이 장소를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이 곳은 후기성도의 공적을 생각하는 곳이 되고 일리노이 뿐만 아니라 미국 사회의 근본인 종교적 관용, 정치적 아량 그리고 사회적 관대함을 키우는 터가 되어야 한다고 연설하였다.
옛 일리노이 주지사와 지금의 주지사 부인이 말한 것을 비교하여 본다면 몰몬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이 얼마나 근본적으로 바뀌었는가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자리에서 벤슨 대관장은 톰슨여사에게 교회가 수집 정리한 톰슨 주지사의 선조에 관한 족보사본을 선물하였다. 교회는 다른 기독교 교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활동을 많이 전개하고 있다. 솔트 레이크 시티의 역사적 건물 중의 하나인 매들린 성당(Cathedral of the Madeleine)은 오래되고 매우 낡아서 대대적인 수리가 불가피하였다. 가톨릭교회에서는 수리를 위한 모금운동을 전개하였으나 충분한 기금이 마련되지 못하였다. 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는 역사적인 가치가 있는 이 성당을 보존하기 위한 모금운동에 적극 참여하였다. 수리가 끝난 후 1993년2월 20일에 행해진 헌납식 광경은 브리감영 대학의 교육방송(PBS)을 통하여 저녁 7시에 생방송으로 청취자들에게 중계되었다.
이 헌납식에서는 가톨릭 교회의 초청을 받아 토마스 에스 몬슨 제일회장단 회장이 교회를 대표하여 설교를 하였고 두 사람의 사도가 동행하였다. 매들린 성당 헌납식에서 로스앤젤레스 대교구의 대주교인 마호니(His Eminence Cardinal Roger Mahony) 추기경은 성당 수리를 가능케 한 유타의 가톨릭 교회와 솔트 레이크 지역 사회의 노고를 치하하면서 모금위원회의 공동위원장 네 사람 중 한 사람만이 가톨릭 신자이고 나머지는 지역 사회 유지들이었음을 상기 시켰다. 그는 몰몬 성전과 가톨릭 성당이 인간의 가치와 미래에의 희망을 나타내는 놀라운 상징물로서 나란히 서 있다고 말했다.
이 성당을 위한 모금 위원회의 공동위원장 이었던 유명한 실업인 인 몰몬신자 존 헌츠맨 장로는 이 일을 계기로 바티칸의 초청을 받고 로마에 가서 1993년 5월 12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면담했다. 헌츠맨 장로는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먹이는 세계적인 가톨릭 구호조직인 세인트 빈센트 드 폴에 대해서도 여러 해 동안 커다란 재정적 지원을 한 바 있었다. 가톨릭 신자로 헌츠맨 장로를 수행했던 솔트 레이크 시티의 변호사 패트릭 쉬어(Patrick A. Shea)씨는 교황과 헌츠맨 장로가 전쟁, 기아, 천재지변 등등으로 고통을 겪는 사람들을 구해야 한다는 공통적인 관심사를 가지고 만났다고 전하고 다음과 같이 부연했다. "몰몬 교회는 종교와 인종에 관계없이 고통받는 자에게 도움을 주는 가톨릭 교회의 노력을 지원하고 있다. 세계는 고통받는 사람을 구해야 한다는 그리스도의 메시지를 받아들여야 한다. 교황께서는 기독교 일치를 위한 모임을 주관하고 계신다. 내가 만난 그 모임의 고위 성직자 한 사람은 가톨릭 교회가 몰몬 교회 사이에는 큰 차이점이 있지만 공동의 관심분야에 함께 눈을 돌리고 함께 일해야 한다고 말했다" 교황과의 면담 후에 헌츠맨 장로는 "교황은 온 인류에 대한 위대한 사랑과 관심을 가진 분"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1993년 5월 2일에는 기독교 화해 정신에 따라 매들린 성당 예술축제에 몰몬 태버나클 합창단이 초청되었으며 양 교회의 많은 지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몰몬 태버나클 합창단은 감동적인 공연을 하였다.
1992년 크리스마스 시즌에 교회는 솔트 레이크 시티와 인근에 있는 1백50여명의 모든 교파의 지도자들을 초청하여 우정을 나누고 몰몬 태버나클 합창단의 연주를 듣는 기회를 만들었다. 미국의 저명한 관장지도 및 여행서적 출판사인 랜드 맥낼리(Rand McNally)는 [세계의 경이 : 인류문명의 걸작 안내]라는 책을 발간하였다. 1991년에 발간된 이 책에는 인류가 만든 1백가지 걸작품을 소개하였는데 이 중에는 옛날에 만든 파르테논 신전, 크렘린궁, 베르사이유궁전, 만리장성, 피라미드, 마추피추 사원이 포함되었고 현대에 와서 만든 에펠탑, 자유의 여신상,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등도 소개되어 있는데 이러한 걸작품 중 하나로 이 출판사는 40년에 걸쳐 완성된 솔트 레이크 성전을 선정하였다. 두 페이지에 걸친 솔트 레이크 성전의 설명 란에는 성전과 주의 관광명소에 대한 역사와 내력과 아울러 유타 황무지 도착 후 6년 만에 시작된 건설공사와 관련하여 주민의 근면성과 희생과 봉사 그리고 브리감 영의 천재적인 지도력에 관하여 기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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