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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 : 어떻게 읽을 것인가?

스티븐 시 워커
 

표준 경전을 아무리 많이 읽고,  그 말씀을 아무리 많이야기하고, 심지어 부를 암기할지라도 우리 가운데는 경전을 이해하는 것에 관해서는 근본적으로 교육이 되어 있지 않는태로 남아 있는 사람이 많다. 우리들 중에는 하나님의씀을 읽을 때에 그 말만 읽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 가운데 사람들에게 경전이 변화를 가져 오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가 그것 읽는 방법을 모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문제는 경전이 영적인 것인데, 경전을 읽는 방법을 밝히 보여 주지 않는 것이 문제일 있다. 우리는 모든 것을 항상 덧붙이거나 과장하는 세계에 살고 있다. 우리는 눈부신 네온사인, 번쩍이는 광고, 텔레비전 및 라디오의 선전이 끊임없이반복되는 속에 휩싸여 있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을 알고 광고 메시지를 차단하는 능력은 경전을 해석하는 별로 도움이 안된다.

그것은, 선전 덧붙여 말하는 반면 경전은 줄여서 말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갖고 있는 가장 오래된 경전인 성경보다 그것이 분명히 나타나는 곳은 없다. 히브리의 선지자들은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과리"를 두들기지 않고 좀더 깊은 지식을 갖고 그들활하는 기록했다.

우리가 매일 읽는 익숙해져 있는 얄팍한 자료와 비교할, 그들의 기록은 굉장히 압축되어 있다. 만일 우리가 일간 신문이나 잡지를 읽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 경전을 읽을 있다고 생각학다면 경전에서 암시만 하고 있는 부분, 상세한 배경, 그 행동을 하게 상황, 관련된 사람들의 분위기나 성품을 많이 놓치게 된다.

그리하여 우리 생활에 진정한 영향을 미칠 있는 성경 메시지의 더욱 중요한 부분과, 동기를 부어 주는 부분과, 경전의 여러 가지 면을 놓치게 된다. 우리는 거의 누구나 다윗이 거역하는 아들에 대한 비탄과 갇이 분명한 것에 대하여서는 내적으로 비탄에 잠길 있다. "내 아들 압살롬아 내가 너를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아들아."(사무엘하 18 : 33) 그러나레비전의 폭력과 현대 소설의 극단적으로 감각적인 것에 둔해진 감각은 좀뎌 섬세하고, 좀더 깊이 느껴지는 성경의 감정을 놓치게 된다. 려진 가지 일화를 면밀히 살펴보자. 어느 ,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음섭으로부터 이삭을 모리산으로 데리고 가서 번제 제물로 드리라는 명을 받는다.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사환과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의 자기에게 지시하시는 곳으 가더니 " 삼일에 아브라함이 눈을어 그곳올 멀리 바라본지라."(창세기 22 : 3-4)

이것은 깊은 의미가 담긴 표현이다. 구절마다 중요만 내용을 담고 있다. 세세한 사항이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 아브라함이 "아칭에 일찌기" 일어나는 모습에서 우리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분명히 수 있다, 세세한 말이 아브라함의 훈련된 상태와 주저하지 않고 하나님에게 헌신하는 것을 확인해 주고 있다. 이것으로 인하여 아브라함은 이삭의 희생을 실행할 수 있게 것이다. 우리는 희생이 그에게 어떤 것을 요구하는가 하는 것도 똑같이 있다. 이삭은 그저 "이삭" 아니라 "그의 아들 , 이삭"으로서 약속의 아들이며, 그가 노년에 오래 기다렸던 아들이며, 히브리 전통에서는 너무나 중요한 분명한 가계 전통에 있어서 아브라함의 상속자이며, 하나님께서 직접 이틀 밤에 "네 아들 사랑하는 이삭"이라고 말씀하신 아들인 것이다. (창세기 22 : 2)

경전의 구절에 단지 많은 것이 흐르고 있을 아니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중요한 것이 흐르고 있다.

아브라함과 이삭이 경험한부분의 행위와 가장동적인 연은 문장이 끝나고 둘째 문장이 시작되기 이전의 그 사이에 일어난다. 아브라함이 서둘러서 준비하고 단호하게 출발하는 모습을 서술한 다음에 처음으로 나오는 것은 아브라함이 3 희생을 바칠 산을 바라보는 모습이다. 여기에서 저자는 자기 독자를 희생으 바치려는 아버지의 기나긴 번민의 사흘간과 절대적으로 선량한 이 사람이 겪는 한 점증하는 갈등을 전적으로 우리의 상상에 맞기고 있다. 아브라함은 욕심많은 나그네와 까다로운 여러 아내와 은혜를 모르는 조카들에게 관해했으며, 너무나 온화한 아브라함이 우르와 애굽으로부터 달아난 것은 부분적으로는 인간을 희생으 바치는 풍습이 그에게는 너무나 싫었기 때문이었다.

그가마나 오래 고통을 겪고 얼마나 깊이 비탄에겼으며, 큰 비탄 가운데 눈을 땅으로 얻어뜨린 것에 대하여 암시해 주는 이야기는 극히 조금밖에 없으니, " 삼일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곳을 멀리 바라본지라."(창세기 22 : 4) 잔인한 태양 밑에서 끝없는 사막을 허덕이며 여행하는 3일을 영화로 만든따면 어떻게 될지 생각해 보자, 틀림없이 영화의 카메라는 아브라함의 마음에 "들어가서" 이삭의 탄생, 이삭이 흐뭇한 표정으로 오는 아버지 앞에서 양을 쫓는 모습, 사라의 품에서 잠든 이삭에 패한 추억, 앞으로 있을 희생 장면에 상상, 아브라함이 칼을 높이 치켜 장면을 주고, 다시 이삭의 크게 갈색 눈과 사라의 눈물, 아브라함이 고개를 숙인 모습을 교대로 확대시켜서 보여 줄 것이다.



 

그러나, 선지자들은 우리가 영화 제작자 이상으로 것을 기대하고 있다. 그들은 우리가 자신의 영적인 상상력을 활용하여 아무렇지 않게 하는 말같이 보이는, "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동안 라반을 봉사하였으나 그를 연애하는 까닭에 칠 년을 수일같이 여겼더라."(창세기 29 : 20) 말씀을 깊이 상고할 것을 기대한다. 독자가 이런 구절을 무심히 지나쳐 버리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러나 7년을 압축해서 말한 이 간단한속에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이상의 것이 숨겨져 있다.
그러나 기록되지 않은 상세한 내용을 간과 한다면 라헬 매력에 대한 엄청난 찬사의 힘과 야곱의 씩씩함과 끝까지 충성하는 인간의 영혼의 힘을 완전히 놓치게 된다.

자기 자신이 성급하고 조바심나는 젊은 시기에 7 동안이냐 덥고 바람불고 모래가 날리고새나고 힘든 사막에서 염소와 양을 돌보는 모습을 상상해 보아야성경 구절에서 간단하게 묘사하고 있는 것의 깊은 의미를 이해하기 시각하게 된다.

성경을 오늘 아침 조간 신문처럼 읽는다면 사랑과 슬픔 이상의 것을 놓치게 된다. 예를 들어, 요한의 어머니인 마리아의 집의 하녀 로데는 문을 두드리는 사람이 베드로라는 것을 알고 너무나 기뻐서 불과 분 전에만 해도 천사를 불러 감옥 문을 열게 했던 주님의 예언자를 밖에 버려둔 "문을 미처 열지 못하고 달려들어가 말하되 베드로가 대문 밖에 섰더라 하니."(사도행전 12 : 14)

성경 전체를 통털어간의 본성이 밝게 나타나며, 엄한 사도 바울의 긴 설교에 관한 기사처럼 가장 그럴 것 같은 곳에서도 나타난다. 그 회중 가운데 "유두고라 하는 청년"있었으며, 오랜 설교를 참고 들은 사람들은 그를 동정할 있었다.

"바울이 강론하기를 오래 하매 졸음을 이기지 못하여 삼층 누에서 떨어지거늘."(사도행전 20 : 9)(불행히도 그는 떨어져 죽었으며, 그것은 설교 도중에 꾸벅꾸벅 조는 모든 사람에게 경고가 될 것에 틀림없다.)

성경을 무심히 읽으 요한 것을 많이 잃는다. 그 유모어, 정념, 사랑 등을 놓친다. 그런 인간 본성을 다루는 것을 모르게 되면 경전에 나오는 사람들은 인간이 아니라 규정집에 나오는 피도 감정도 없는 모범인 것처럼 생각하게 된다. 그런 사람들은 우리에게 지식은 줄지 모르지만 우리가 나은 행동을 하도록 동기를 부여해 주지는못한다. 깊이 생각하면서 읽지 않는다면 유두고로부터 동안에 깨어 있는 것의 유익함이나 야곱으로부터 사랑에 대하여서, 아브라함으로부터 헌신에 대하여 거의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 문제는 매일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말의 세계가 우리로 하여금 피상적인 말에 더욱 익숙해지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키는 " 훌륭한 것에" 무감각해지고 있다. 우리의 현대 생활의 피상적인 혼돈 속에서 우리가 경전에서 성령의 작고 고요한 음성을 찾아 내려면, 엘리야가 산에서 하나님을 찾기 위하여 했던 것 만큼이나 집중해야 것이다.

"여호와께서나가시는데 여호와의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테 여호와께서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 지진 후에 불어 있으나 불 가운데도 여호와께서시지 아니하더니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열왕기상 19 : 11-12)

다른 모든 경전과 마찬가지로 성경도 섬세하고 압축된 것이며, 우리 생활의 기본적인 부분이 되도록 이것을 이해하려면 세밀하게 집중해서 읽어야 한다. 아브라함과 야곱, 요셉과 모세, 삼손과 기드온, 다윗과 다니엘, 엘리야와 요나, 라헬, 리브가, 룻 이야기는 읽을 가치가 있다.

정말로 가치가 있다. 자신이 그 이야기의 환경 속에 들어가 있는 모습을 상상해 가치가 있다. 성경과 경전은 모두 졸리게 하는 단순한 독서 과제 이상의 것이다.

우리와 똑같은 인간들이 깊은 느낌을 갖고 기고의 훌륭한 행동을 수 있다는 확신을 주고, 영적인 사기를 진작시켜 주며, 선한 일을 하도록 직접 자극을 주는 것으로서 경전은 문학적인 면에 있어서도떨어지지 않는다. 경전에 몰입하고, 경전이 우리 내부로 들어오게 하기 위하여 우리는 열심히, 세심하게, 사랑하는 마음으로 경전을고해야 한다.